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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일제의 대종교 탄압과 치안유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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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pression of Daejonggyo in 1942 by Imperial Japanese Police under Public Order Maintenance Act

장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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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Many researchers have revealed how the Japanese Police authorities cracked down on Daejonggyo(大倧敎 Korea’s indigenous religion of the Divine Progenitor) in 1942, an incident also known as Imogyobyeon(壬午敎變 religious persecution in the Imo year). However, they have failed to link the 1942 event to the Public Order Maintenance Act(治安維持法) and clarify how and why Manchukuo(滿洲國 Japanese name for the State of Manchuria, 1932-45) applied the Law to Daejonggyo leaders. Some records and research papers described that the Manchukuo security authorities in 1942 used the Provisional Disciplinary Rebellion Act(暫行懲治叛徒法) to repress the religious leaders, which is far from the fact. The authorities took advantage of the Public Order Maintenance Act, which went into effect in December 1941, to plan the oppression. Therefore, this paper outlines the Provisional Disciplinary Rebellion Act and the Provisional Disciplinary Bandit Act(暫行懲治 盗匪法) and explores the enactment of the Public Order Maintenance Act in Manchukuo, a puppet state of the Imperialist Japan, and how and why the act was applied to oppress Daejonggyo leaders and followers. The Empire of Japan invaded Manchuria in September 1931(Mukden Incident), established the puppet state, and enacted the two provisional acts, which served to shackle anti-Japanese activists. Notably, Japan stipulated in the Provisional Disciplinary Bandit Act summary punishment provisions allowing for discretionary power(裁量措置) and beating prisoners to death on the battlefield(臨陣格殺). The provisions were indiscriminately applied as the legal basis to suppress and eventually devastate the armed struggle against Japan. Furthermore, the dummy government promulgated and enforced the Public Order Maintenance Act and Enforcement Decree to follow the Peace Preservation Act(May 1925) in Japan and Joseon(朝鮮) under Japanese rule as well as the revised act(May 1941) in Joseon. Indeed, the state's act had harsher provisions. For example, the act maintained the summary execution provisions mentioned above. Regrettably, after its enactment and implementation, more than 10,000 people were punished under this act by August 1945, and as many as 2,000 people were sentenced to death and executed. The draconian provisions in Manchukuo were, under the guise of legality, were made much stricter than those applied in Japan or colonial Joseon. Therefore, the sufferings of the followers and 25 leaders of Daejonggyo in 1942 needs redefining in terms of the application of and suppression under the Public Order Maintenance Act. The Manchukuo authorities, in particular, passed judgment on the religious leaders by citing the opinion of indictment under the Public Order Maintenance Act that (the religion’s) “National Polity Transformation (國體變革) equals Joseon independence.” In other words, the authorities interpreted (and decided) that "national polity" was the Empire of Japan and "transformation" meant to separate Joseon from the national polity. This judgment proves that the actions of the Daejonggyo leaders do not simply constitute a religious movement, but a colonial liberation or independent movement. In this respect, the Japanese imperialist suppression of Daejonggyo in December 1942 needs to be evaluated as a suppression case of Daejonggyo’s national (independent) movement and activists, not a simple manipulation and punishment against a religion.

한국어

지금까지 수행된 많은 ․연구를 통해 1942년 일본 경무당국의 대종교 탄 압사건인 ‘임오교변(壬午敎變)’의 실상은 거의 규명되었다. 그러나 일 제와 그 괴뢰국인 ‘만주국’ 당국의 대종교 주도세력에 대한 만주국 ‘치안유지법’적용 탄압의 실상과 그 의미는 아직 규명되지 못했다. 일부 기록과 연구서 등에는 임오교변 당시 만주국 치안당국이 '잠행징치반 도법(暫行懲治叛徒法)’을 적용하여 대종교 인사들을 탄압한 것으로 서 술되어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1941년 12월 제정된 ‘치안유지 법’을 적용하여 일대 조작탄압사건을 벌인 것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잠행징치반도법’․ ‘잠행징치도비법(暫行懲治盗匪法)’을 개략적으로 검토한 뒤 만주국에 서의 치안유지법 제정과 대종교도에 대한 치안유지법의 적용, 그리고 그 의미 등을 고찰하였다. 일본은 1931년 9월 중국 동북지방(만주)을 침략한 ‘9․18사변(만주사 변)’을 도발한 뒤 일제의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을 세운 뒤 대거 봉기한 항일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잠행징치반도법’․‘잠행징치도비 법’을 제정․운용하여 항일세력에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잠행징치도비 법의 ‘임진격살(臨陣格殺)’과 ‘재량조치’등의 즉결처분 규정이 항일 무장투쟁 세력 탄압의 주요 법률근거로 무자비하게 적용되어 큰 피해를 입혔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본의 허수아비국가인 만주국은 1925년 5월 일본 과 식민지 ‘조선’에 적용된 치안유지법, 그리고 1941년 5월 조선에서 의 개정 치안유지법 제정 등에 영향받아 1941년 12월 27일 치안유지법 과 ‘치안유지법 시행령’을 공포, 시행하였다. 그런데 만주국 치안유지 법이 훨씬 가혹했다. 예를 들면 앞에서 예시한 ‘잠행징치도비법’의 즉 결처분인‘임진격살’과 ‘재량조치’등이 만주국 치안유지법에는 존속 했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만주국에서 이러한 치안유지법이 제정, 시행된 이후 1945년 8월까지 이 법률로 처벌된 사람이 1만 수천명에 이르고, 무려 2천여명의 사형판결과 그 집행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일본이나 식민지 ‘조선’보다 더욱 엄격한 치안유지법이 ‘합법성’을 가장한 채 집행된 것이다. 대종교 세력에 대한 일대 탄압사건인 ‘임오교변’과 주도자 25 인의 수난도 이러한 만주국 치안유지법의 적용과 그 탄압이라는 시각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만주국 당국이 대종교 세력에 대해 “국체변혁(國體變革) = 조선 독립”이라는 치안유지법 적용 기소 의견을 그대로 적용하여 판결한 사 실은 대종교 요인들의 행위가 단순한 종교운동이 아니라, 식민지 해방운 동 곧 독립운동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국체변혁은 명 백히 식민지 ‘조선’을 일본제국이라는 ‘국체’로 부터 ‘이탈’시키 고자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해석(판결)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일 제의 1942년 12월 대종교 대탄압(‘임오교변’) 은 단순한 조작, 처벌 이 아닌 대종교의 민족(독립)운동적 성격과 활동에 대한 명백한 일대탄 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일제의 ‘9ㆍ18사변(만주사변)’ 도발과 만주국의 ‘잠행징치반도법’ㆍ‘잠행징치도비법’
3. 만주국의 치안유지법 제정과 운용
4. 만주 대종교 세력에 대한 치안유지법의 적용
5. 임오교변과 강철구·김영숙의 사례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장세윤 Chang, Se-Yun.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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