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한국어
이 논문은 18세기 조선후기, 기호유학(畿湖儒學) 가운데서도 노론학통을 계승하여 호학(湖學)의 일인자가 된 남당 한원진의 이기설(理氣說)에 주목하고, 그의 의해 명대(明代) 중엽의 유학자인 정암 나흠순의 이기일물적(理氣一物的) 인식체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판되고 있는지와 함께 그러한 비판의 배경에 대해 살핀 글이다. 나흠순은 『곤지기(困知記)』에서 이기일물에 입각하여 정주(程朱)의 이기설을 이해함에 있어 특히 기에서 독립된 리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그리하여 리와 기를 두 실재[二物]로 인식하는 사유체계를 비판하였다. 나흠순의 이러한 이기일물적인 사유체계에 대한 한원진의 비판의 방식은 간명한 인식체계 아래 이루어졌다. 그것은 본원과 유행의 관점에 따라 리와 기는 둘이면서도 하나요, 하나이면서도 둘이기 때문에 그 관계성이 불리이면서 부잡, 선후의 있고 없음, 같고 다름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나흠순이 비판의 예봉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이기일물설이 불리의 한 쪽에 치중하여 이기의 관계성을 평면적으로만 파악해냈기 때문이다. 한원진은 리를 주로 하는 학문을 정학(正學)으로, 그리고 기를 주로 하는 학문을 이단(異端)으로 단정한다. 이러한 판별기준으로 본다면, ‘기의 리’로서 이기일물설을 주장하는 나흠순의 학문은 리를 기에 종속시키는 인식체계이므로 비록 노불이나 육왕학과 같은 극단적인 이단으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에 버금가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원진은 이단을 곧 ‘분별력의 상실[無分]’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를 인수무분(人獸無分)‧유석무분(儒釋無分)‧화이무분(華夷無分)으로 인식해냈다. 분별력이 상실된 현실에 직면하여 한원진이 택한 유일한 처방책이 바로 정학인 주자학 수호였다. 양란 이후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중화 질서 붕괴에 따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선이 순정한 주자학의 나라로 거듭나서 중화의 참된 계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철저한 이단 비판을 통해 정학을 구축하는 것을 자신의 평생의 사명으로 여겼던 것이다. 요컨대 한원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정학을 받들고 이단을 내치는 데 있었으며[扶正學, 闢異端], 이를 평생의 정론(定論)으로 여겨 실천에 옮겼다. 나흠순의 이기일물설에 대한 비판의 이면에는 이러한 시대적 사명이 담겨 있다.
중국어
本論文硏究18世紀朝鮮後期在畿湖儒學派當中繼承中老論學派成爲湖學第一人的南塘韓元震的理氣說, 還硏究他怎麽批評明朝中期的儒學家整菴羅欽順的理氣一物的認識體系和該批評的背景是什麽. 羅欽順堅持理氣一物說, 在『困知記』討論程朱之理氣說時, 他肯定理獨立於氣而存在, 從而批評了 理氣二物說的思惟體系. 韓元震批評羅欽順理氣一物的思惟體系是在簡明的認識體系下進行的. 那就是在分爲本源和流行的觀點, 卽理和氣是二而一, 一而二. 因此兩者的關係是不離不雜, 只有先後之別. 羅欽順之所以不能避免被批評, 是因爲他的理氣一物說只側重不離的一面, 就認爲理氣是平面性的關係. 韓元震把以理爲主的學問看做正學, 把以氣爲主的學問看做異端. 以這種標準看, 主張理氣一物說的羅欽順的學說認爲理從屬於氣, 因此雖然不是像老佛或陸王學的極端的異端, 但也算是接近於它的學說. 韓元震把異端看做無分, 認爲自己的時代是人獸無分‧儒釋無分‧華夷無分的時代. 面對無分的現實, 韓元震選擇的唯一方法就是衛護正學卽朱子學. 他認爲兩亂以後, 爲了安定民心、克服中華秩序的崩潰所導致的混亂, 朝鮮應當作爲朱子學的國家, 繼承中華文化, 還把澈底地批評異端、衛護正學作爲自己終生的使命. 總之韓元震最大的關心在於扶正學闢異端, 而且還把它做實踐. 羅欽順批評理氣一物說, 裡面有這樣的時代的使命.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나흠순의 이기일물설과 정주학 비판
3. 한원진의 나흠순 이기일물설 비판
1) 이기와 그 관계
2) 이기일물설 비판
4. 맺음말: 한원진의 정학과 비판의 배경
참고문헌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