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The meaning of restoration of Shangshu(尙書) during pre-Han[前漢] period
초록
영어
This research analyzed the background and purpose of restoration of Shangshu(尙書) during pre-Han[前漢] period, and discussed the political and ideological characteristic of Shangshu proper for the purpose of restoration. Also, considered the process of development of Confucianism before Wudi[武帝] and suggested a point that ‘virtue’ ruling of the emperor before Wudi came from the content of Shangshu. As in various imperial edict of Wendi, it was definite that Wendi aimed at Confucian emperor image, accordingly, Wendi period seemed to have intended to created the image[象] of emperor power in different figure from Qin(秦) dynasty by Emperor accepting Confucianism. The core of Study of Shangshu(尙書學) during pre-Han period was to learn the politics of reign of peace that Yao[堯] conducted, furthermore, to apply and conduct the sage king’s lesson in the actual politics. Also, it is remarkable that the understanding of the emperor’s ‘virtue ruling’ was regularized since the point when Shangshu was transmitted when Wendi sent Zaocuo[鼂錯] to Fusheng[伏勝] of Jinan[濟南]. Since the restoration of Shangshu, the emperor mentioned about emperor Yao․Shun[舜] every time, complaining about ‘lack of virtue’, comparing his own virtue to the saints. It reminds of the phrase, ‘Fear’ of emperor of pre-Han about heaven, mentioned by Zhaoyi[趙翼], ‘Heaven’s order is difficult to preserve, and the heaven is hard to believe[天命不易, 天難諶]’, Zhougong[周公] Dan(旦) talked to Shaogong[召公] Shi[奭] warning in Junshi[君奭] part of Shangshu. That is, heaven does not protect the heaven’s order on the ruler when virtue disappears. The emperor’s will could be discovered, who intended to practice the lesson of Shangshu through the political act, nervously ordering a decree of amnesty, protecting the people to recover the exhausted virtue. Here, ideological influence of Shangshu could be investigated.
한국어
본 논문에서 필자는 한초(漢初) 문제(文帝) 시기 『상서(尙書)』의 복원 배경과 목적을 분석하고, 복원 목적에 부합하는 『상서』의 정치사상적 특징에 대해 논하였다. 그리고 무제(武帝)이전 유가의 발전 과정에 대해 고찰하고 한초 황제의 ‘덕치’지향이 『상서』의 의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문제의 여러 조서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가 유가적 황제상을 지향하고 있었음은 분명하기 때문에, 이 시기 이미 황제권력이 유학을 수용해서 진(秦)과는 다른 모습의 황제권력의 상(象)을 창출하려고 했음을 충분히 상정할 수가 있다. 전한시기 상서학(尙書學)의 핵심은 요(堯)가 행했던 태평성세의 정치를 배우고, 더 나아가 성왕이 남긴 교훈을 실제 정치에 적용, 시행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또 황제의 ‘덕치’에 대한 이해가, 문제 때 조착을 제남의 복승에게 보내 『상서』를 전수받게 했던 시점으로부터 본격화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상서』 복원 이후, 황제는 말마다 요․순 임금을 언급했고 자신의 덕을 성인과 비교하며 ‘부덕’을 탓하기도 했다. 조익(趙翼)이 언급한 전한 황제의 하늘에 대한 ‘두려움’은 마치 『상서』 군석(君奭)편에서 주공(周公) 단(旦)이 소공(召公) 석(奭)에게 경계하며 말한 ‘천명은 보존하기 쉽지 않고, 하늘은 믿기 어렵다[天命不易, 天難諶]’라는 구절을 연상케 한다. 즉 덕이 쇠하면 하늘은 통치자의 천명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쇠한 덕을 회복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사면령을 내리고, 백성을 보호하고, 현자를 등용하는 등의 정치행위에서 『상서』의 교훈을 표면적으로 이행하고자 했던 황제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상서』의 복원 의미와 전한시기 정치에서 그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한초 유학부흥의 배경
3. 『상서』 복원과 사상적 특징
4. 『상서』 복원의 의미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