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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탑비, 전통양식의 계승과 변화

원문정보

Steles of the late Goryeo Period – inheritance of traditional patterns and subsequent changes of style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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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During the late Goryeo Period (918-1392), steles with a turtle-shaped base and a dragon’s head continued to follow the established tradition. Simultaneously, however, new and alien patterns were adopted in an attempt at diversification. In the period between the late 12th century and the early 13th century, steles with an angular head and a rectangular base, and ones with a turtle-shaped base and a rectangular head made their first appearance. The newly adopted patterns became more simplified and looked less imposing than their predecessors. The steles made in this period, including those with a turtle-shaped base and a dragon-like head, appear inferior to their predecessors in terms of the overall sculptural techniques used to make them. Such a phenomenon was caused by the decline in status of Buddhist circles, which had hithert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erection of pagodas and monuments, following the military coup of 1170 (the 24th year of the reign of King Euijong of Goryeo). The Stele for State Preceptor Jingak at Wollamsa Temple (1250), erected with the positive support of the Choe regime, which seized power after the military coup, exhibits the traditional tortoise-base, dragon-head pattern. It is superior to its predecessors in terms of its size and the sculptural techniques employed in its creation. The Stele for Royal Preceptor Seongak at Hoeamsa Temple (1377) appears to be directly influenced by the pattern of the Yuan Dynasty of China, which had remained unchanged since the Tang Dynasty. The pattern of the Yuan Dynasty was adopted as a mainstream pattern for monuments erected in temples associated with the royal family or those erected near the tombs of kings and members of the nobility. The steles became more simplified and smaller between the end of the Goryeo Period and the early Joseon Period.

한국어

塔碑는 신라하대부터 龜趺螭首 형식으로 조성되기 시작해 12세기 전반까지 그 형식을 유 지해 왔다. 고려후기에는 전통을 계승한 귀부이수 형식의 탑비를 계속해서 조성하는 한편 새 로운 형식이 채용되고 외래 양식이 유입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고려후기에는 20여기 이상의 탑비가 건립되었지만, 현재 전하는 것은 9기 정도이다. 또한 <월남사 진각국사비>가 조성된 1250년부터 <회암사 선각왕사비>가 조성된 1377년까지는 전 하는 예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공백기에 가깝다. 고려후기의 초반에 해당하는 12세기 말~13세기 초에는 전통양식을 계승한 <영국사 원각국 사비>(1180년), 방부규수 형식의 <서봉사 현오국사비>(1185년), 귀부규수 형식의 <보경사 원 진국사비>(1224년) 등 다양한 형식의 조성 사례가 있다. 이 시기 탑비에 채용된 새로운 형식 은 비 받침과 비신만으로 간략하게 구성된 형식으로 귀부이수에 비해 격식이 떨어지는 형식 이며, 귀부와 이수를 채용한 탑비의 경우도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떨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장인의 기량문제, 그리고 무신정변 이후 그동안 탑비 조영을 주도하던 교종세력이 쇠퇴하고 불교계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된다. 한편 무신정변 이후 불교계는 신앙결사와 최씨정권의 수선사 지원으로 선종이 새롭게 부상 하게 되는데, 특히 수선사는 제2세인 眞覺國師 慧諶 때 최씨정권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 조성된 <월남사 진각국사비>(1250년)는 전통적인 귀부이수 형 식을 채용하였고, 규모와 조영기량 면에서도 이전 시기의 탑비보다 우수하다. 1377년 조성된 <회암사 선각왕사비>는 귀부이수 형식이지만 비신과 이수가 한 돌로 구성 되어 있는 등 우리의 전통적인 귀부이수 형식의 탑비와 큰 차이가 난다. 14세기에는 원 황실 과 귀족들에 의해 고려 사찰에 불사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元 장인들의 직접적 인 조영활동도 활발한 시기였다. <회암사 선각왕사비>는 唐代이래 같은 형식을 유지하고 있 는 元代 양식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탑비이다. <회암사 선각왕사비>로 대표되는 원대 양식 은 이후 왕실 불사와 관련된 사찰의 비석이나 왕릉 및 사대부묘의 신도비 등 소위 주류 비석 의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반면 신라하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우리나라 비석의 주류를 형성했 던 귀부이수 형식의 탑비는 고려말 조선초의 시기를 거치며 방부규수 형식으로 간소화되고 조영자체도 줄어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후기 탑비 현황
 Ⅲ. 탑비건립의 새로운 경향과 변화원인
 Ⅳ. 조선초기 비석에 미친 영향
 Ⅴ.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저자정보

  • 박상준 Park Sang-jun. 불교문화재연구소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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