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Gyodong Tomb No. 12, which was excavated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has been widely known as one of the main examples of a wooden chamber tomb with stone mound found outside of the Gyeongju area. However there are uncertainties surrounding the structure and grave goods of this tomb as the excavation results have not been formally reported. Recently, opinions have been put forth regarding the possibility that it may instead be a stone-lined tomb. In this paper, the drawings and pictures made during the Japanese excavation were examined in detail in order to confirm the structure, character and meaning of the tomb. As a result, it was possible to observe that the structure and the construction process of Gyodong Tomb No. 12 are almost identical to that of the small and medium-sized wooden chamber tombs with stone mounds of the Gyeongju area, apart from some elements that pertain to location. This indicates that the construction of the tomb was managed by an individual or group from Gyeongju. The nature and placement of the grave goods, which include personal ornaments, as well as the size of wooden chamber indicate that the tomb was that of a female individual. Of the six grades of the Gyeongju wooden chamber tombs with stone mounds, Gyodong Tomb No. 12 belongs to the third grade, which corresponds to the status of a low ranking noble of the capital. It is possible to suggest that the owner of the tomb was a noblewoman from the capital who had come to Changnyeong due to reasons of marriage, etc. It seems that, at the time, inhabitants of Gyeongju often came to Changnyeong to visit or settle down. It is likely that their role was not to apply political pressure on Changnyeong but to help maintain an amicable relationship between Gyeongju and Changnyeong.
한국어
창녕의 교동 12호분은 일제강점기 때 발굴 조사된 이후 경주를 제외한 지역에서 확인된 가장 대표적인 적석목 곽묘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왔다. 발굴 이후 정식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덤의 구조와 유물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알려져 있지 않음에도 대부분의 신라고고학 연구자들에 의해 창녕을 신라의 지방으로 이해하 는 중요한 근거자료 중 하나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창녕지역에 대한 고분조사가 증가함에 따라 이 지역 고총만의 특징적 요소인 개석 위의 적석양상이 뚜렷하게 확인되었고, 12호분을 이와 유사한 구조를 한 석곽묘로 보고자하는 의견이 제시되는 등 무덤의 구조와 성격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시점에서 일제강점기조사 당시의 도면과 사진자료를 면밀히 재검토하여 12호분의 구조와 축조 공정 및 성격과 축조의미 등을 상세히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 12호분은 지형적 영향에 따른 일부 요소를 제외하고는 구조와 축조공정에 있어서 경주의 중소형 적석목곽묘와 거의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구조와 축조공정이 유사하다면 12호분의 축조는 경주(왕경)출신의 축조공인(설계자)에 의해 이뤄졌음 을 지적하였다. 뿐만 아니라 출토유물(착장 장신구류)의 내용과 부장양상 및 목곽규모 등을 분석하여 12호분 의 피장자를 여성으로 추정하였고, 무덤의 등급을 경주 적석목곽묘 내에 존재하는 6등급에 대비시켜 그 중 3 등급에 해당하는 왕경귀족 하위등급으로 상정하였다. 나아가 무덤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내용으로 보아 12호 분의 피장자는 경주 출신의 왕경귀족 여성으로서 특정시점에 혼인 등에 의해 경주에서 창녕으로 이주했을 가 능성에 대해 지적하였고, 이 시기 12호분의 피장자 뿐만 아니라 일부의 경주인들이 창녕지역에 자주 왕래였거 나 이주해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이들은 창녕지역 지배세력에게 어떤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존재라기 보다 신라(경주) 중앙과 창녕지역 지배세력 간의 우호적 관계유지를 위한 매개체와 같은 역할을 하였을 것이 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구조와 축조공정 복원
1. 조사경위 및 현황
2. 연구약사
3. 구조 재검토
4. 축조공정 복원
5. 목곽의 크기와 비율
Ⅲ. 출토유물의 검토
1. 출토유물의 내용 및 부장양상
2. 착장유물의 조합상과 등
Ⅳ. 교동 12호분의 성격과 축조의미
1. 교동 12호분의 성격
2. 교동 12호분의 피장자와 축조공인
3. 교동 12호분의 축조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