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When feeling depressed, worried or agonized, people usually try to get some peace of mind by singing. Hearing themselves singing, people tend to feel relieved or refreshed at heart. Though the reason is not clear, it definitely means the sound of singing has some power to arouse
people’s consciousness. In fact, many Buddhist sages used to recite their religious doctrines and tell their beads, not limited to sedentary invocations.
Cheontaejii was the one who actively suggested this flexible method of invocation among others. According to some records, few achieved spiritual enlightenment during the ancient Chinese Period of North and South Dynasties, though there were a number of ascetics. It is thought that
this led Cheontaejii to compile all the invocation methods of the times, mentioning it.
Priest Cheontaejii is seen as a marginal figure for orthodox Buddhism and its aim and intention is somewhat different. Though orthodox Buddhists emphasize that Nirvana should be attained by repeating the sacred name of Buddha, priest Cheontaejii puts an emphasis upon passing into Nirvana by one’s own effort. For him, to repeat the name of Buddha is an auxiliary way to achieve
supreme enlightenment.
By the way, the sedentary invocation and rotating invocation he suggested show some similarities differences.
Not only are both of them divided into three parts – invocation by the body, mouth and mind, but each prayer session of both of them lasts for 90 days. That is identical to the period of a Varsa currently conducted by Korean Buddhists. Throughout a session of invocation but when taking a meal or going to bathroom, the prayer is sedentary all the time. Though it is required to be mute in principle, the prayer can pronounce Buddha’s name in a penitent manner to get rid of his or her inner agony if it keeps agitating his or her mind. This, however, is secondary and variable.
During a rotating invocation, the prayer continues to walk around while telling his or her beads. Every step and sound he or she makes, the prayer does not stop from concentrating or contemplating upon Buddha while pronouncing Buddha’s name repeatedly and reciting the 32
characteristics of Buddha’s appearance incessantly. This is the point differentiating the sedentary invocation and rotating invocation. While the former emphasizes the pronunciation of Buddha’s name, it is more important to pray by looking at and contemplating upon Buddha for the
latter. Priest Cheontaejii, however, never mentioned about which one is superior or how the two of them can complement each other.
For Cheontaejii, a prayer to Buddha itself is not the ultimate goal, but a way to attain supreme enlightenment. In other words, it is something secondary and auxiliary, a means and not an end. For him, it is the ultimate end to step onto the phase of penetrating into the Three Boundaries with one’s mind.
한국어
우리는 기분이 울적할 때나 삶의 애환과 고민이 많을 때 노래를 부르면서 시름을 달래곤 한다. 왠지 모르게 노래가 소리를 통해서 밖으로 나왔을 때 시원함을 느끼거나 개운함을 경험한다.
이것은 소리가 우리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힘이 있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로 많은 깨달음을 얻는 선지식들은 좌선 수행과 더불어 많은 진언행과 염불을 수행하였다.
천태지의는 4종삼매의 수행법 가운데 常坐와 常行三昧에 이런 유연한 방법을 제시해 놓고 있다. 남북조시대에 수행자는 늘어났지만 득도자는 많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지의는 당시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던 모든 수행법을 정리하면서 그 속에 이러한 내용을 기술한 것으로 생각된다.
천태는 기존의 정통적인 정토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방계에 속한다. 그리고 그 지향하는 입장이 다르다. 즉 기존의 정토교에서는 칭명염불에 의해 타력으로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천태는 칭명염불을 주된 실천행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력으로 止觀을 성취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상좌와 상행삼매의 수행법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두 삼매의 방법은 몸과 입과 마음의 三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간규정이다. 상좌와 상행삼매는 모두 90일을 1기간으로 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선원에서 이루어지는 안거의 기간과 동일하다. 그리고 상좌삼매의 몸의 자세는 식사나 용변을 제외하고 오로지 바르게 앉아서 좌선을 한다. 입으로는 침묵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질병이나 수면 등 내외의 장애가 생겨 正念을 지닐 수 없게 되었을 때 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서 참회하고 이 장애를 제거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관된 행법이 아니라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상행삼매의 몸의 자세는 오로지 돌면서 걸어다니는 行旋을 한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거나 32상을 염하고 혹은 양자를 함께 행하면서 쉬지 않고서 걸음걸이마다 소리소리마다 생각생각마다 오직 아미타불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에 상좌와 상행의 차이가 있다. 상좌는 칭명염불을 강조하여 명호의 공덕을 말하고 있지만 상행은 觀想念佛과 칭명염불을 선과 후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칭명과 관상염불의 우열이나 상호 도움의 관계에 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음에는 止觀을 성취하기 위한 염불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의에게 있어서 염불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止觀을 성취하여 一心三觀의 실상을 증득하기 위한 보조적이며 방편적인 방법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목차
Ⅱ.『摩訶止觀』의 염불사상
1. 常坐三昧의 염불방법
2. 常行三昧의 염불방법
Ⅲ. 나가는 말
국문 요약문
영문 요약문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