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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加耶와 吉備의 교류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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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における加耶と吉備の交流の樣相

고대 가야와 길비의 교류 양상

李永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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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본 논문은 고대의 키비(吉備)와 가야의 정치적 교섭과 키비지역에 남아있는 가야계 도래문화의 몇 가지를 검토한 것이다. 키비와 가야의 정치적 교섭은 ‘吉備反乱伝承’이 전하는 야마토정권의 키비 통합을 전후로, 5세기 전반까지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造山․作山古墳의 주인공이 가야와 독자적인 교섭을 추진하던 단계와, 키비의 외교교섭권이 야마토 정권에 흡수되는 5세기 후반 이후의 단계로 나누어진다. 「欽明紀」에 任那日本府로 기록된 키비노오미(吉備臣) 등은 왜에서 가야에 파견되었던 사신으로, 5세기 후반 이후 야마토 정권에 의해 좌우되던 키비와 가야의 지역적 교섭을 보여주는 것이며, 「応神․雄略紀」에 보이는 韓계통, 특히 가야계 집단의 이주와 정착에 관한 전승 등은 그 이전의 인적 물적 교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키비지역에 남아있는 가야계 도래문화의 흔적에 대해서는 고대의 지명 인명 씨족명, 키노죠(鬼ノ城)의 우라(溫羅)전승, 貨泉 鐵生産 부뚜막(竈) 등에 주목하였다. 키비지역에 남아있는 고대의 지명 인명 씨족명에는 가야의 명칭 ‘가야’와 ‘아야’로 읽혀지는 것이 아주 많다. 가야 관련의 고고자료에 비추어 남는 자료만으로 키비와 가야의 교류사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서기 9년 중국의 新왕조가 주조했던 貨泉이 가야와 키비에서 출토되고 있다. 화천은 1~3세기경의 전기가야 시기에 황해도의 대방군에서 김해의 구야국을 거쳐, 왜국에 이르는 바닷길을 통한 인간과 물자의 왕래를 보여주고 있다. 빗츄(備中)의 가야씨(加夜氏)와 빈고(備後)의 아나씨(穴)는 가야계 씨족으로, 8세기경까지 키비지역을 지배하던 씨족집단이었다. 특히 가야씨는 키비씨의 본가이기도 하였다. 이에 우리 학계에 소개된 바 없는 아시모리하치만신사(葦守八幡神社=葦守宮) 정문(鳥居)에 새겨진 명문을 제시하여, 14세기 중엽까지 가야씨가 키비 중심씨족의 하나였음을 밝혔다. 가야군(賀陽郡)군 중심에 존재하는 키노죠(鬼ノ城)에는 가락국(김해)의 건국신화와 흡사한 우라(溫羅)전승이 전해지고 있다. 변신하는 동물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쫓기는 세력(키비의 우라와 가야의 탈해)과 쫓는 세력(키비의 키비츠히코와 가야의 수로)의 대결구도와 변신의 패턴은 같은 꼴이다. 고대의 키비가 철의 선진지역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로, 그 시작에 철의 왕국 가야와의 인적 물적 교류가 중요한 전제로 되었음에 대해 목간과 󰡔일본서기󰡕와 같은 문자기록과 고고자료를 제시하여 논증하였다. 끝으로 키비에서 검출되는 5세기 중엽 이전의 부뚜막은 가야계 이주민의 사용과 신앙 활동의 흔적으로 판단하였다. 쏘우자시(總社市)의 오기야쿠시유적(窪木藥師遺跡)의 고정식 부뚜막은 󰡔三國志󰡕가 전하는 변진=전기가야의 부뚜막신앙과 통하는 것으로, 김해 부원동유적과 진주 평거동 유적 등에서 확인되는 것과 동일하고, 폐기의례에 사용되었던 鐵鋌과 鐵钃은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품과 같은 것이다. 김해 부원동유적에서는 부뚜막 근처에서 卜骨과 4세기 전반의 산인계(山陰系) 하지키(土師器)가 출토되고 있다. 가야의 부뚜막신앙과 키비에 인접한 산인지역과의 교류가 아울러 확인되고 있다. 가야인들이 부뚜막과 부뚜막신앙을 가지고 키비지역에 이주했던 흔적은 키비츠신사(吉備津神社)와 ‘가마솥님(お釜殿)’, 그리고 ‘울리는 부뚜막제사’에서도 확인된다. 키비츠신사에서는 가야의 건국신화와 같은 변신경쟁의 주인공 키비츠히코(吉備津彦)가 주신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우라(溫羅)의 머리는 숭배대상의 ‘가마솥님’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키비츠신사 역시 에도시대까지 가야씨에 의해 경영되었으며, 신사의 북쪽에는 지금도 카라천(辛=加羅川)이 흐르고 있어, 가야계 이주민들의 흔적으로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일본어

本論文は、古代韓日における吉備と加耶の政治的交涉や、吉備地域における加耶系渡來文化に關わる幾つかの要素について私見を述べてみたものである。
吉備と加耶の政治的交涉については、いわゆる吉備反乱伝承が物語る、大和政権による吉備統合を前後にして、二つの時期に分けられる。まず、5世紀前半まである程度の独立性を維持していた造山․作山古墳の主人公たちが、加耶諸國を相手に、独自的な交渉を押し進めていた段階があり、その後その外交交渉権が大和政權に吸収された5世紀後半以後の段階と分けられよう。「欽明紀」に任那日本府として記された吉備臣などは、倭国から加耶に派遣された使者として、5世紀後半以後、大和政權によって牛耳られた吉備地域と加耶諸国との政治的な交渉を示すものであり、「応神․雄略紀」にみえる韓系統、特に加耶系渡来人の移住や定着に関わる伝承などは、それ以前の人的․物的交流を物語るものと考えられよう。吉備地域に残る加耶系渡來文化の痕跡については、古代の地名や人名また氏族名、 鬼ノ城に残る溫羅傳承、貨泉․鐵生産․竈などの考古資料に注目した。吉備地域に残る地名․人名․氏族名の中には、カヤまたアナと読まれるものが非常に多く、それらの中には古代韓国の加耶との何らかの関わりを持つものも多い。もちろん、近似した指摘や研究が以前から無かったわけでもないが、厳密な史料批判や客観的な検証の過程を経たものはあまりみられない。本稿では政治的また人的․物的交流に関わる文献または伝承史料を、吉備地域に残る考古資料に照り合わし、それに耐えたものだけを、吉備と加耶の交流の痕跡を留めているものと評価し、それらをもって両地域における交流の復元を試みた。
A.D9年、中国の新王朝が鑄造した貨泉が加耶と吉備の遺跡から出土している。貨泉は1~3世紀(前期加耶)頃、北朝鮮黃海道の帶方郡から狗邪國(金海)を経て、倭國に至る海上の道を通じた、人間や物資の往來をみせてくれる。吉備と中國の文物が、金海の加耶国で交換され、加耶の文物もこの道を通じて吉備に傳えられたのである。古墳時代に先立つ吉備と加耶の交流を物語る重要資料となる。備中の加夜氏や備後の穴氏が、加耶系渡来氏族であり、8世紀頃まで吉備地域の支配氏族であったことは、「日本書紀」․「國造本紀」․「風土記」などから明らかで、特に加夜氏は吉備氏の本系でもあることが、「吉備津神社」․「葦守八幡神社」などの縁起から確かめられた。今まで殆んど紹介されたことのない、葦守八幡神社(葦守宮)鳥居の銘文を提示し、カヤ(賀陽)氏が14世紀中葉まで吉備地域の中心氏族として名を馳せていたことを論証した。賀陽郡の中心に位置する鬼ノ城には、加耶(駕洛國、金海)の建國神話と酷似している溫羅傳說が、今でも伝えられている。變身競爭のモチ—フがそれで、変身する動物の種類には若干の違いはあるが、追い出される勢力(吉備の溫羅、加耶の脫解)と、追い出す勢力(吉備の吉備津彦、加耶の首露)の対決構造や変身のパタン—はソックリである。同じ勢力争いの出来事が、同じ物語の構造やモチ—フで伝えられることは、住民の移動のような人的交流の痕跡としてみてよかろう。古代の吉備が鐵の先進地域であったことはよく知られている。同じく、古代の加耶が鐵の先進国であったこともよく知られている。4世紀の岡山市金藏山古墳から出土したの斧形鐵器は、慶南の鎭海熊川貝塚や陜川玉田M3號(121個)出土のものと同じ製品で、加耶の鐵が吉備に渡った痕跡でもある。窪木藥師遺跡の竪穴住居でみられるごとく、吉備の製鐵や鍛冶には、加耶系の韓鍛冶が投入されていたと考えられる。平城宮跡出土の木簡に記された「大井鍬十口」の大井は賀夜郡の大井鄕と考えられており、この大井鄕は千引カナクロ谷遺跡に近接する地で、東漢人部がいる。カヤ(賀夜)郡でアヤ(漢)部である。吉備の製鐵の始まりに、加耶諸國との關連が考えられる。吉備で検出される5世紀中葉以前の竈であれば、渡來人による築造と使用の可能性が高い。總社市南東の窪木藥師遺跡には、北西の壁に造り付け竈が設けられ、竈には鐵鋌と鐵钃が置かれていた。この鐵鋌と鐵钃は、加耶の釜山東萊福泉洞古墳群22號と21號墳(5世紀)の出土品と酷似している。󰡔三國志󰡕は弁辰(前期加耶)の竈信仰を伝え、皆戶西に竈を施したと書かれたが、同時期の金海府院洞遺跡で造り付の竈が報告される。なお、竈の近いところから卜骨も出土し、4世紀前半の山陰系土師器も出土している。加耶における竈信仰の存在や、中国地域との交流が裏付けられた。竈や竈信仰を携えて吉備地域に移住した痕跡は、吉備津神社やそこのお釜殿と鳴る釜の神事でも考えられる。吉備津神社と釜殿は、加耶の建國神話と近似した變身競爭モチーフをもつ、吉備津彦が主神として奉られ、溫羅の頭が埋られた所でもある。何よりも吉備津神社は江戶時代までカヤ(賀陽、加夜)氏によって營まれてきた。さらに、吉備津神社の北には今もなおカラ(辛=加羅)川がある。以上のごとく、吉備における加耶の竈と竈信仰、そして加耶系渡來人の影を垣間見ることができた。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문헌자료의 가야(加夜․蚊屋․賀陽)와아나(阿那․安那․穴)
  1. 地名과 人名
  2. 任那關聯氏族의 吉備氏
  3. 加耶系渡來氏族의 加夜氏와 穴氏
   (1) 備中의 加夜氏
   (2) 備後의 穴氏
 Ⅲ. 鬼ノ城의 溫羅傳承
 Ⅳ. 고고자료의 가야와 아나
  1. 加耶와 吉備의 貨泉
  2. 加耶와 吉備의 鐵生産
  3. 加耶와 吉備의 부뚜막(竈)
 Ⅴ. 맺음말
 參考文獻
 <日語要旨>

저자정보

  • 李永植 이영식. 인제대학교 역사고고학과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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