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Uam Song-Siyeol(1607∼1689) was a great Confucian scholar who stressed the build of national self-respect directly after the Second Manchu invasion of Korea(1636).
The constituent elements of the governing thought of Song-Uam are as following.
① Building up the Chosun Dynasty of the Confucian cultured society and the stabilization of the people's livelihood.
② Developing national resources for the clearing himself of the disgrace from the aggressor Ching(淸)
③ Between sovereign and subject, being faithful to govern the nation by way of the being unselfish and straightforwardness.
④ Making a great contribution towards international self-respect of maintaining friendly relations with Ming(明).
한국어
尤庵 宋時烈은 29세 때 장차 孝宗이 되는 鳳林大君의 師傅 직위를 받음으로서 왕조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그에 있어서 丙子胡亂의 치욕은, 尊周攘夷의 文化意識과 우국충정의 雪恥意識 그리고 은밀한 北伐論를 낳게 하였다.
우암이 국가 경영의 원론을 밝히는 부분에 있어서는 朱子의 견해를 제일로 삼았다. 이러한 사실은 「己丑奉事」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처럼 주자를 모델로 삼았던 데에는, 우암자신의 학맥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국가적 雪辱意識도 보인 그에게서 남다른 실효적 공감성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자의 각종 言說은 문화적 자존의식은 물론 ‘以直報怨’의 태도로 排淸意識을 심화해 가는 데에 하나의 종지로 활용되었다. 올곧음[直]의 정신은 우암 경세관의 요체로 확인된다.
우암은 왕조시대의 정치 현실을 직시하여 군주의 위상을 국가 운영의 중심으로 전제하며 성군을 향한 修己治人의 능력함양 문제는 대학의 格致誠正의 논리로 해결하고 있었다. 그가 문화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천명하고 군자-소인의 차이를 말하며 公義․公道의 길로 勝私 행정론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적 ‘遏人欲存天理’의 태도, 율곡의 ‘理氣不相離’의 논리가 낳는 실천정신, 그리고 스승 沙溪-愼獨齋를 통한 예의의 인간관 및 스스로의 남다른 애국 애민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1. 머리말
2. 경세사상의 형성 배경
3. 尊周 自尊의 국가관
4. 경세의 원리와 성군론
1) 경세론의 원리
2) 성군 치도론
5. 勝私 행정론
6.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