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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陽尉 申翊聖의 駙馬로서의 삶과 문화활동

원문정보

A Study on the a royal son - in - law's life and cultural activity of Dongyangwi(東陽尉) ShinYigseong(申翊聖)

동양위 신익성의 부마로서의 삶과 문화활동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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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東陽尉 申翊聖(1588~1644)은 17세기초 조선의 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인물이다. 駙馬는 입신할 수 없다는 신분적 제약이 있었지만, 신익성은 부마로서 누리는 혜택을 동원하여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친 것이다. 부마로서 누리는 혜택이란 왕실을 통해 얻게 되는 최신의 문화정보와, 무엇보다도 문화사업을 벌일 만한 경제력의 확보를 의미한다. 신익성은 경제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近畿에 대규모 전장을 경영하였고, 이것은 후에 그의 예술문화활동의 기반이 된다. 그가 벌인 문화활동은 첫째, 독자적인 서적의 출판과 간행이다. 家塾에 집안의 활자를 소장하고 부친 신흠의 문집을 간행하였고, 이와 같은 전통은 후손에까지 이어졌다. 둘째, 서화취미와 대규모 장서이다. 신익성은 예술적인 기질이 남달라 서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고, 특히 明 서화 및 서적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자 하였다. 셋째, 산수유람의 풍류를 즐겼다. 사회정치적 진출의 기회가 없는 부마의 신분이었던 신익성은 명산대천 속에서 仙分을 과시하고 승려와 교류하였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풍류가 목적이었는데, 그의 유람에 동행한 이들의 면면이 시인, 악공, 기생 등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람의 풍류를 다양한 문학 형태로 남겼다.이와 같은 신익성의 문화활동은 조선후기 京華士族의 것과 거의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18세기의 京華士族은 京邸와 近畿 別墅를 오가며 지내며,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대규모 장서와 서화 취미를 즐겼다. 또한 眞景山水의 그림과 시를 위해 금강산 등지를 여행하였다. 이러한 경화사족의 문예 취미는 이미 17세기 초의 신익성이 펼친 문화활동 속에 포함된다. 경화사족은 정치적 안정 속에 문화적 사치를 즐길 여가를 획득할 수 있고, 전대의 문예적 성취를 계승하여 조선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문학 영역을 확충해 나갔다고 할 수 있는데, 곧 신익성이 그 선구가 된다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駙馬의 위상
 3. 경제적 여유와 전장 경영
 4. 예술취향과 문화활동
  4.1. 서적 출판
  4.2. 書畵 취미
  4.3. 대규모 臧書
  4.4. 산수유람
 5. 신익성의 문화활동의 의미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은정 Kim, Eun - Jeong.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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