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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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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문학의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수신사행록은 통신사행록의 전개가 거의 종결되고 근대적 기행문으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이행기 기행문의 한 갈래라 할 수 있다. 사행왕래의 기간이 짧고 그 기록도 많지는 않지만, 전근대 해외 사행록의 소멸과 근대적 기행문의 탄생이라는 전환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수신사행록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국문학에서 수신사행록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최초의 수신사행록인 일동기유를 중심으로 사행록의 지속과 변모라는 관점에서 그 현상과 요인을 다시 고찰해 보았다. 일동기유는 사행록의 전형적 모습을 따르고 있지만, 변화된 사행의 조건에서 사행록의 말로를 예견케 하는 대목들이 산견된다. 새로운 운송수단 등 사행의 여러 조건과 양상이 달라져 이것이 사행기록의 글쓰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사행에서 중요한 문화적 교류였던 시문창화가 수신사행록에서도 이어졌지만 그 양상은 조선통신사와 비교했을 때 사뭇 달랐다. 이렇게 사행록의 여러 성격이 변화한 것은 세계사적 범위에서 일어난 역사적 격변에 기인한다.또한 그동안 일동기유를 다룰 때 중요하게 논의되었던 일본인식의 문제도 다시 살폈다. 사실 이 시기 조선은 여전히 중세체제에 머물러 있었으며 일본은 이미 근대라는 시간으로 건너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수신사행은 일본이라는 공간을 여행한 것 외에 근대라는 시간여행을 한 셈이다. 근대 일본에서 사행을 수행하는 동안 일본은 조선에 근대로 이행할 것을 줄기차게 강요하였다. 일본은 조선으로 하여금 자국의 근대화를 두루 유람하고 이것을 적극 수용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 지식인의 관념과 시각으로 근대일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수신사행록 일동기유는 조선의 근대 수용전후의 인식의 양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교린체제의 종말과 근대로의 使行
2.1. 여행수단의 변화와 필기체
2.2 이어진 관례, 달라진 양상 - 시문창화
3. 중세 지식인이 본 '근대'라는 견문
3.1. 강요된 시각으로서의 유람
3.2 해석할 수 없는 견문 - 근대 그리고 부국강별
4. 마무리
참고문헌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