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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송기수의 사환이나 정치 활동, 혹은 학문 활동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인적 배경에 대해서 추적한 것이다. 조선 건국 초 정치적 혼란에 당하여 隱遁으로 그 상황에 대처하던 은진송씨(恩津宋氏)는 송기수의 고조인 송계사(宋繼祀)에 이르러 중앙에 진출, 본격적인 사환활동을 하였다. 이후 송순년(宋順年), 송세충(宋世忠)으로 이어지면서 지속적으로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던 은진송씨는 송기수가 좌참찬을 역임하며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송기수를 비롯한 은진송씨의 정치 활동은 각자의 뛰어난 역량에 의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를 둘러싼 인척인, 연안이씨(延安李氏) 이석형(李石亨), 전주이씨(全州李氏) 주계군(朱溪君) 이심원(李深源), 경주김씨(慶州金氏) 김정(金淨), 나주정씨(羅州
丁氏) 정옥형(丁玉亨) 등의 존재도 이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배경이 되었다.
송기수가 교류하던 인물은 연상으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를 비롯해 부친의 친구인 한효원(韓孝元)과 김안국(金安國) 등과 함께 연하인 김성일(金誠一), 오건(吳健)과 외손 신흠(申欽) 등에게까지 이어졌다. 그가 교류했던 인물은 조정의 고관은 물론이요, ‘처사형사림(處士形士林)’이라고 하는 성효원(成孝元)․성제원(成悌元)을 비롯해 조욱(趙昱) 등 까지 그 대상은 다양하였다. 이들은 서울, 경기 이외에도 경상․전라․충청․강원도까지 지역을 초월하였으며, 학문적으로도 특정 문파에 고착화되지 않고 여러 계통의 학인들과 교류하며 학문의 포용성도 보여주었다. 이런 교류 인맥을 통해 송기수는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학문적인 교류나 정치론, 혹은 정치상황 등에 대해 토론하며 때로는 협력자로, 때로
는 지원자로 활동하였다.
목차
1. 머리말
2. 가계(家系)
3. 교유 인맥의 범위
4. 사림과의 교유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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