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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샤왕과 대승불교의 관계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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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the Relations between King, Harsha and Mahāyāna Buddhism

공만식

한국선학회 禪學(선학) 제19호 2008.02 pp.6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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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After the Gupta period, political turmoil among small kingdoms in Northern India deprived Harsha of his beloved ones. This unrest was damaging to bothe individuals and the society in the 7th Centrury C.E. It was Harsha who brought about political unification and social stability in
Northern India.
It seems that Harsha patronized Buddhism before he came to the throne, but there are no clear records of his Budhist beliefs and activities until the later stage of his career. After he took the throne, he conducted religious assembly every five years for kings, ascetics, and the poor.
He forbade the slaughter of living beings throughout the Five Indies as flesh for food. He erected hospices providing food and drink on highways to all towns and villages throughout India, and stationed physicians at these to dispecse medicines for travellers and the poor, without
stint. He erected several thousands Stupas on the banks of the river, Ganges, and raised Saṅghārāmas wherever there were holy traces of the Buddha.
He was also keenly interested in the Buddha's teachings on peace and non violence, diligently practising rules of temperance. He also composed the Buddhist play, 󰡔Nāgānanda󰡕.
The monks, Divakaramitra and Hiuen Tsiang, no doubt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King Harsha's Buddhist ideas-especially Mahāyāna Buddhism-and his Buddhist play and the incident which occurred during the Prayoga Assembly are probably also products of this influence. So
finally and perhaps withe some confidence, we can say that, at least in the later stage of his life, there is sufficient evidence to suggest that Harsha thinks and acts as Mahāyāna Buddhist.

한국어

굽타왕조의 몰락 후 북인도의 정치적 분열상은 개인 그리고 당시의 군소왕국에 끊임없는 참극과 전쟁을 야기했으며 하르샤는 개인적으로 당시 시대적 상황의 최대의 피해자로 당시 북인도의 정치적 분열상을 극복하고 북인도에 정치적 통일을 가져왔다.
設賞迦王(Śaśāṅka)왕의 고다국 정벌로 시작되는 하르샤의 사행정복은, 두 번째로 빤잡(Pañjob)의 신드(Sindh)지역, 세 번째로 캐쉬미르지역, 네 번째로 오릿싸에 위치한 Oda국과 Koṅgoḍa국의 정복, 다섯 번째로 네팔을 정복하여 북인도 전체를 통일한다.
북인도에 거대한 통일왕국을 건설한 하르샤는 그 점령지 정책에 있어서 이전 왕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르샤는 군사정복을 통해 해당왕국을 멸망시키기보다는 그들의 군사지휘권의 상징인 소라고동을 빼앗거나 그 나라의 재보가 아닌 왕국의 명예를 가져갔다. 따라서 하르샤에 의해 정복된 왕국들은 여전히 왕국을 유지한 채 하르샤의 신하국으로 편입된 것이다.
비록 하르샤의 가계는 전통적인 힌두신앙을 믿었던 듯 하지만 하르샤는 불교승려, 디바까라미뜨라와의 만남을 통해 불교신앙과 접하게 되고 당대 최고의 학문적 중심지인 나란다사의 계현논사를 비롯한 불교승려들을 통해 대승불교 신앙을 개인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던 듯 하다. 그의 불교적 사고와 신앙는 그가 지은 세 가지 희곡 중, 󰡔나가난다(Nāgānanda)󰡕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희곡은 그의 다른 두 개의 희곡보다 후대에 지어진 성숙된 문학적 내용을 보여주는 불교적 소재가 중심이 되는 희곡이다. 이 나가난다(Nāgānanda)는 붓다에 대한 귀경게로 시작되고 있으며 보살의 삶과 불살생의 교리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승불교를 자신의 신앙으로 수용한 하르샤는 나란다사의 대승논사들의 편에서 소승교의를 논파할 목적의 논쟁을 마련하는 등 대승불교의 선양에 열성인 군주였다. 󰡔大唐西域 記󰡕나 󰡔大慈恩寺三藏法師傳󰡕은 그의 대승불교적 신앙이 즉위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즉 즉위시에 하르샤가 관세음보살에게 자신의 왕위즉위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내용은 그 내용이 하르샤가 즉위 이후에 성취한 정치적 과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등 후대의 삽입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하르샤의 관세음보살이라는 대승보살에 대한 신앙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르샤와 대승불교의 연관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불교신앙과 사고는 불살생에 근거한 그의 통치방식과 모든 중생에 대한 무차대회와 같은 복지적 보시정책을 통해서도 살펴 볼 수 있다. 하르샤와 관련된 중요한 문헌들인 󰡔Harṣacarita󰡕,󰡔大唐西域記󰡕, 󰡔大慈恩寺三藏法師傳󰡕와 같은 문헌들은 하르샤가 특히 그의 생애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시기에 보여준 그의 행적들을 묘사하면서 그가 명확히 불교, 특히 대승불교를 수용하고 그것을 선양하는데 열의를 가진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르샤는 불교에 대하여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에 머무르기보다는 적극적인 대승교도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왕의 모습을 관련문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목차

Ⅰ. 서언
 Ⅱ. 후기굽타시대와 하르샤왕의 家系
 Ⅲ. 하르샤왕과 그의 통치
 Ⅳ. 하르샤왕과 불교
  1. 하르샤왕과 관세음보살
  2. 하르샤의 불교희곡 Nāgānanda
  3. 하르샤의 소승논파
  4. 하르샤에 대한 불교승려의 영향
  5. 쁘라야가(Prayāga) 무차대회
 Ⅴ.결어
 국문 요약문
 영문 요약문
 참고문헌

저자정보

  • 공만식 Kong, Man Shik. 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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