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企劃論文 : 韓國 性理學의 展開와 旅軒思想(II)

鶴沙 金應祖의 생애와 학문

원문정보

On life and thought of Kim Eung-jo

학사 김응조의 생애와 학문

김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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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this article, the author aims at reconstructing a Neo Confucianist Kim Eung-jo's (or Haksa, 1587~1667) life and major characteristics of his thought. He belonged to the tradition of Toegye School and was strongly influenced by Yeoheon sect of the School. Still, his works have not been under scrutiny so far, and this article aims at the very work of clarifying his family background, his life and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his thoughts on simseong suyang ron, hwa-yi ron, ye-ron. This will contribute to recasting and fertilizing our understanding of Yeoheon Schol and late Choseon period intellectual history.

한국어

학사 김응조(1587~1667)는 장현광(여헌, 1554~1637)의 제자로 영남 퇴계학파의 한 전통을 계승하는 학자였고 그의 학문에는 퇴계학파, 특히 여헌학파의 문제의식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응조의 가문은 송도와 서울에서 세거했으며 그의 선조들은 도학을 중시했는데, 성혼의 문인이면서 이황을 존숭했던 그의 아버지 김대현 때까지만 해도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맥을 모두 이었지만, 집안이 영남으로 낙향한 이후 그의 형제들은 모두 영남학파의 일원으로서 남인의 정치노선을 충실히 따랐으며 척화론을 지지했다. 물론 그의 집안의 이러한 정치적 노선과 학풍은 김응조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김응조의 일상생활은 ‘敬’ 한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마음이 발하기 전(未發)이나 이미 발한 후(已發)에나 모두 敬한 상태로 몸과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그가 사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 함양하고(敬) 마음이 이미 발했을 때 성찰하며(誠) 몸과 마음을 다스렸던 것이다. 김응조는 장현광에게 예학에 대해 주로 배웠던 것 같은데, 이를 바탕으로 四禮問答을 편찬하였다. 이는 주자대전과 퇴계집, 서애집, 한강집, 여헌집 중에서 관혼상제에 대한 예설을 모아 분류하고 편집한 것으로 가례에 대한 영남 퇴계학파의 설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한편 그는 중화와 오랑캐에 대하여 매우 강렬한 구분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랑캐’인 청나라가 ‘중화’의 나라 명을 멸망시키자 그 의식이 더욱 고조되었다. 또한 북인과 조목에 의해 주화론자로 몰렸던 류성룡을 변호하는 西厓柳先生辨誣錄을 짓고, 이 일을 계기로 퇴계학파 내부에서 심화되었던 조목 문하와 류성룡 문하의 갈등을 조정하려 노력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퇴계학파 내부에서 조정자이자 정리자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논문 요약>
 I. 서론
 II. 가문
 III. 생애
 IV. 학문
  1. 심성수양론
  2. 예론
  3. 화이론
 V. 결론
 <참고 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태년 Kim Tae-neon. 강원대학교 강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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