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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眉巖日記』에 나타난 민속 일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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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Folk Customs of Mi-am Ilgi

『미암일기』에 나타난 민속 일고찰

宋宰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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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Mi-am Yoo, Hee-chun was a well-known statesman, scholar and a literary man. Mi-am Ilgi(11 books) are worth in many scientific side. Especially, Mi-am Ilgi is a very important researching material to understand 15th century folk customs. So I discussed about ceremonies, season's customs and folk games.
As a result of this thesis, the customary formalities of a family followed Joojagarye but was not settled as shown at Mi-am Ilgi. It is proved by the coming-of-age ceremony was hold informality and omitted at the official families.
I could realize from it that Joojagarye was not popular till that time. It is worth of researching Mi-am Ilgi because it has a lot of ceremony records of the time.
There are many only records about season's customs and folk games such as a man with earing and Ipchunnakyung in Mi-am Ilgi.
As shown as above, orders of royal and general ceremony, season's customs and many folk games of the time are recorded at Mi-am Ilgi.
So the book is very important at the point of researching folk customs of the time.
In conclusion, Mi-am Ilgi includes many records of 16th century folk customs and it is a representative researching material. In addition to this, we can compare folk customs between the time and later ages and study its transfiguration by ages.

한국어

眉巖 柳希春(1513~1577)은 宣祖 때의 名臣․學者․文人으로서, 그의 『眉巖日記』(11책)는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사상․어문학․민속학적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특히 􋺷眉巖日記􋺸는 1500년대의 민속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眉巖日記』에 나타난 의례, 특히 관․
혼․상․제례와 세시풍속과 민속놀이 등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였다.
본고에서 논의한 사항들을 종합하여 결론으로 삼으면 다음과 같다.
유희춘의 『眉巖日記』를 보면, 관․혼․상․제례의 경우 朱子家禮를 따르기는 했으나 완전히 정착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관례를 행할 때 약식으로 하거나, 士大夫家에서 조차 관례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례에서는 古禮를 따르는 경우도 있었다. 즉, 襲과 小殮을 첫째 날에 한꺼번에 행하거나, 弔問할 때 成服을 하지 않았는데도 變服을 안 하고 護喪의 얼굴만 보고 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제례 때 진설(특히 제사 상 차림)이나 성묘 순서, 奉祀 代數 등에서 주자가례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로써 보건대 당시까지 주자가례의 일반화가 덜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眉巖日記』에는 당시의 의례와 禮俗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기록들이 많은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의 경우 관련 각종 기록 등을 많이 남기고 있어 민속학적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 중에서 특히 立春裸耕과 大小男兒의 귀고리 다는 민속에 대한 기록은 『眉巖日記』에만 볼 수 있어 주목된다.
이밖에도 오산잡희․채봉놀이․산대놀이 등에 대한 기록 역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결과 『眉巖日記』는 당시의 禮俗과 의례절차, 세시풍속과 각종 민속놀이 등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바, 당시의 민속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헌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眉巖日記』는 16세기의 대표적인 민속 관련문헌 자료로 민속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아울러 『眉巖日記』에 기록된 민속은 임진왜란 이후의 민속, 나아가 조선 후기의 민속이 어떻게 변모되었는지를 이들 민속들과 비교하여 추찰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序言
 Ⅱ. 儀禮
  1. 冠禮
  2. 婚禮
  3. 喪禮
  4. 祭禮
 Ⅲ. 歲時風俗
  1. 舊歲拜와 歲拜
  2. 歲畵․冊曆․歲酒
  3. 立春帖(春聯․春帖․春祝․立春祝)
  4. 水團
  5. 省墓
  6. 팥죽(豆粥)
 Ⅳ. 民俗놀이
  1. 石戰
  2. 立春裸耕
  3. 大小男兒의 귀고리
  4. 其他
 Ⅴ. 結語
 【參考文獻】
 Abstract

저자정보

  • 宋宰鏞 송재용. 단국대학교 인재개발원 교양학부 교수, 고전문학 전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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