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동북아시아에서 최초로 벌어진 국제전인 백촌강 전투의 여파로 당시 일본인 야마토의 병사들은 규슈(九州)의 방위를 명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엽집(万葉集)에 84수나 되는 노래를 남긴다. 병사의 노래(防人歌)가 그것이다. 병사의 노래에는 충군애국을 노래한 노래와 강제 징집을 원망하는 노래가 있다. 하지만 이런 노래는 소수에 지나지 않고, 병사의 노래는 대부분의 노래가 가족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지난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병사의 노래는 학교교육 등에 의해 천황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노래로써 일본 사회에 널리 퍼진다. 그리고 병사의 노래는 전의를 고취시키는 데 이용됨으로써 ‘전쟁문학’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예술의 정치화’를 위해 전쟁협력자들이 취한 것은 다름 아니 ‘배제의 원리’였다. 즉 병사의 노래가 가지고 있는 노래의 세계 가운데, 천황에 대한 찬미를 읊은 노래만 선택하고 가족과의 이별을 노래한 작품이나 병사 징집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작품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런 작동 원리를 무엇보다도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병사의 노래가 만들어졌던 당시 그들의 노래를 편집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읊었던 오토모노 야카모치의 세 장가작품의 존재이다.
일본어
東アジアで行われた「白村江の戦い」の影響によって天平勝宝七(七五五)年防人たちは徴兵されるようになる彼らは勤務地に向かう間に歌を歌ったがそれが万葉集に八四首も残されている防人歌には忠君愛国を歌った作品や強制徴集に対する反発を歌った作品もあるがそれらの数は多くないむしろ防人歌のほとんどを占めるものは家族との別れを悲しむ歌々である一方万葉集には防人の悲別に共感した大伴家持の作品(巻20․四三三一~四三三三巻20․四三九八~四四〇〇巻20․四四〇八~四四一二)も載せられている.
ところでアジア․太平洋戦争期に学校教育などによって防人歌は天皇に忠誠を誓う歌としてのみ日本社会に広がるようになりそして戦意を高ぶらせる戦争文学として生まれ変わるようになるこうした「芸術の政治化」のために戦争協力者が用いた方法とはほかならぬ「排除の原理」だったすなわち防人歌が持っているいろいろな性格のうち「大君の命畏み」的発想を有する歌だけを取り上げその他の性格を帯びている作品を排除したのであるそれらには家族との悲別を詠んだ歌や家族の実情を無視して徵召する現実を批判する歌などが入っている.
つまり防人の悲別をテーマとした大伴家持の三つの長歌作品は「防人歌の政治化」のために用いられた方法が「排除の原理」だったということをよく表せている.
목차
Ⅰ. 머리말
Ⅱ. 규슈(九州)해안도서와 병사의 노래
Ⅲ. ‘전쟁문학’으로써의 병사의 노래
Ⅳ. 야카모치의 장가작품의 존재 의미
Ⅴ. 맺음말
【參考文獻】
<日文要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