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한국어
일제하에서 일본은 동화주의와 차별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인을 일본인화 하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일제의 사상적 기조를 이루고 있는 천황중심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사상을 통일 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본은 한국의 종교를 탄압하면서 일본적 신도사상을 주입시키려 하였다. 특히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가지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그 일선에 있었다. 일제 말기에서는 신사참배, 궁성요배 등 교육과 문화 등의 정신적 강압이 심해져 갔다. 이 시기에 조선총독부의 언론에 대한 탄압도 심화되어 갔다. 아이러니칼한 문제로서 일제는 언론을 탄압하면서도 교묘히 지배적 목적으로서 언론을 이용하는 일도 있었다. 본 논문은 특히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시기인 1930-40년대의 언론에 나타난 기독교에 관한 서술의 내용을 분석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기독교 신문’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기독교에 관한 언론의 내용을 보는 것은 언론이 거떤 사회에서도 정치적 반향이 큰 것을 생각할 때, 일제시대의 기독교 정책의 한 가지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탄압이 실시되면서도 ‘기독교 신문’을 만든다고 하는 그 이중성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일제시기의 기독교에 대한 정책을 개괄하고, 일제 말 언론에서의 기독교 서술의 내용과 그 특징을 실 예를 들어 보았다. 최후에 이 시기의 기독교 매체인 ‘기독교 신문’의 특징과 성격을 분석하여 보았다. 일제는 한국을 강점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정책을 일관하여 ‘탄압’으로 하였다. 특히 1930-40년대 일제는 신도사상의 주입과 황국신민화를 강압적으로 추진하면서 기독교를 탄압한 최절정기였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탄압하면 탄압할수록 비밀집회를 여는 등 그 세는 더욱 강화되어 갔다. 언론은 일제의 정책을 선도했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쓰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기독교 신문’은 기독교에 관한 신문이라기보다는 일제의 정책을 호도하는 친일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어
日帝下において日本は同化主義と差別政策を推進しながら韓國人を日本人化しようとした。そのため、日帝の思想的な基調をなしている天皇中心の國家を標榜しながら思想を統一させる必要があった。 日本は韓國の宗敎を彈壓しながら、日本的な神道思想を注入させようとした。特に民族主義的な性向を強くする基督敎の彈壓がその一線にあった。特に日帝の末期になって、神社參拜、宮城遙拜など敎育と文化などの精神的な强壓が深化されていった。この時期に朝鮮總督府の言論に対する彈壓も深化されつづあった。アイロニカルな問題として、日帝は言論を彈壓しながらも、巧妙に支配的な目的として言論を利用することもあった。 本論文は特に中日戰爭と太平洋戰爭の時期である1930-40年代の言論に現した基督敎に関する敍述の內容を分析した。またこの時期に政治的な目的に使用された‘基督敎新聞’について詳しくみた。この時期の基督敎に関する言論の內容をみることは言論がどの社會でも政治的な反響が大きいことを考える時、日帝時代の基督敎の政策のひとつの面貌をみることができる。基督敎の彈壓が実施されながらも、‘基督敎 新聞’をつくったというその二重星こそその問題の核心であると思う。 本論文においてはまず、日帝時期の基督敎についての政策を槪括し、日帝末の言論においての基督敎敍述の內容の特徵を、實例をあげてみた。最後にこと時期の基督敎の媒體である‘基督敎新聞’の特徵と性格を分析してみた。 日帝は韓國を强占し初めから基督敎に対する政策を一貫して'彈壓'していた。特に1930-40年代は日帝は神道思想の注入と皇國臣民化を强壓的に推進しながら基督敎を彈壓した最絶頂期であった。しかし、督敎人は彈壓すると彈壓するほど、秘密集會を開けるなどその勢はもっと强化していた。言論は日帝の政策を先導した。客觀的に事件を書ける言論はほぼなかった。‘基督敎新聞’は基督敎に関する新聞であったというよりも、日帝の政策を好道する親日的な性格をもっていた。
목차
I. 머리말
II. 본문
1. 일제 말 기독교 정책과 기독교의 대응
2. 일제 말 언론에 나타난 기독교 서술 내용
3. '기독교 신문'의 성격
III. 맺음말
참고문헌
抄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