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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懋의 生涯와 武藝觀 — 『武藝圖譜通志』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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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eok Moo's life and view of Martial arts - Focusing on

이덕무의 생애와 무예관 — 『무예도보통지』를 중심으로 —『Muyedobotongji』

곽낙현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26집 2007.03 pp.41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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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is aimed to investigate in to Lee Deok-Moo's life and contents of 『Muyedobotongji』which is contained in 『Cheongjanggwanjeonseo』. Also this thesis seeks for his view of martial art when he had complied martial art textbook.
Lee Deok-Moo's life is classified by 3 parts. The first stage is grown-up aged 1∼17, and the second stage as a retired scholar is from his age 18 to 38. The third stage as a government official is from his age 39 to 53. In addition, he had started his government service as a Gyujanggak geomseogwan in 1779 at his age 39. In 1781 he had worked as a Sadosijubu, December 1781 Sageondochealbang in Hamyang in Gyeongnam at his age 44. He had worked as Kwangheongchangjubu in February 1785 nominated a Saongwonjubu and promoted Jeoksenoghyeon-gam in same year 1785. In 1791, his age is 51. he had appointed Sang-uiwonjubu. In Jan 25 1793, he had passed away due to his chronic disease at his age of 53.
Regarding his academic interchange, It had been consisted of Backtappa. Especially he dicussed his studies Park Ji-won, Park Jae-ga, Lee Seo-goo, Yoo Deok-gong, Paik Dong-soo, the others are Cho Keon-koo, Lee Man-won. moreover Lee Deok-moo has been participated in lots of compiling works and his representative achievements are editing 『Daejeon tongpyeon』and compiling 『Muyedobotongji』. He break 『Muyedobotongji』into origin of a term, use of weapon, posture of weapon, history of weapon in chosun dynasty emphasis of actual fighting etc. The historical investigation can be a basis of his view of martial art and 『Muyedobotongji』is edited with practical view of Myeongmuldosu. It can be inferred from beom-rye and bujin-sal chapter of 『Muyedobotongji』, Ajung-yugo and letter to Sung Dae-jung.

한국어

이 글은 이덕무의 생애와 『청장관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무예도보통지』편찬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 당시 그가 무예교범서를 편찬하면서 가졌던 무예관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덕무생애를 시기별로 구분해 보면 성장기는 1∼17세까지, 처사기는 18∼38세까지, 관료기는 39∼53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의 관직은 1779년(정조3) 39세에 규장각검서관으로 시작하여, 1781년(정조5) 41세에 司䆃寺主簿, 그해 12월 경남 함양에 있는 沙近道察訪, 1784년(정조8) 44세 때는 廣興倉(大倉)主簿, 이듬해 2월 45세때는 司饔院主簿, 6월에 積城縣監에 임명되었다. 1789년(정조10) 46세에는 兼檢書로 임명, 1789년(정조13) 49세에는 瓦署別提에 임명, 1791년(정조15) 51세 때에 尙衣院主簿, 掌苑署別提, 5월에는 司饔院 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1793년(정조17) 1월 25일 그의 나이 53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덕무의 학문적 교유관계는 ‘白塔派’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朴趾源, 朴齊家, 李書九, 柳得恭, 白東修 등과 학문을 논하였다. 이외에 그가 교유했던 인물은 趙衍龜, 李萬運 등이었다. 또한 이덕무는 뛰어난 재식으로 館閣의 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그중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大典通編』(1785), 『羹墻錄』(1786) 등을 校勘하였고, 『武藝圖譜通志』(1790), 『奎章全韻』(1792) 을 편찬한 것이다.
이덕무는 『무예도보통지』의 편찬내용을 어원, 법전체제의 양식, 병기사용법, 각 나라의 기계도식, 각 병기의 자세한 도해, 누구나 손쉽게 익힐 수 있는 해설, 각 병기재질의 전거, 각 병기의 자세, 조선의 역대병제, 사도세자의 계보를 잇는 것,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의 편찬분담 실무내용, 병서에서의 『무예도보통지의』위상,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각 군영의 무예습득 통일과 체계화, 실용성을 갖춘 실전무예 강조 등으로 세분하여 놓고 있다. 이덕무의 무예관은 北學의 고증학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 중 『무예도보통지』는 고증학의 한 분야인 名物度數를 기준으로 하는 실용적인 관점을 가지고 편찬되었다.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편서잡고』의 『무예도보통지』범례와 부진설 그리고 『아정유고』, 선고부군의 유사, 성대중에게 보낸 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목차

<논문 요약>
 Ⅰ. 머리말
 Ⅱ. 李德懋의 生涯
  1. 成長과 官職生活
  2. 交遊關係
 Ⅲ. 『武藝圖譜通志』의 編纂內容과 武藝觀
  1. 『武藝圖譜通志』의 編纂內容
  2. 李德懋의 武藝觀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곽낙현 Kwak, Nak-hyun.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조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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