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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한⋅일양국의 근대 서구 문물 수용 양태 비교 연구 — 朝士視察團과 이와쿠라(岩倉)사절단을 중심으로 —

원문정보

19世紀韓⋅日兩國之近代西歐文物收容樣態比較硏究 –以朝士視察團和岩倉使節團爲主

19세기 한⋅일양국의 근대 서구 문물 수용 양태 비교 연구 — 조사시찰단과 이와쿠라(암창)사절단을 중심으로 —

허동현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24집 2006.06 pp.25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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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1881년의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과 1871년의 이와쿠라(岩倉)사절단은 앞선 외국의 근대 문물제도를 시찰하고 그 견문한 바를 자국의 개혁에 반영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일 두 나라의 근대화 운동사상 획
기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특히 조사시찰단은 우리 역사상 서구 근대문물의 수용을 본격적으로 도모하고, 나아가 일본을 조선 근대화의 모형으로 설정하는 것을 조심스레 모색한 최초의 시도로서 우리나라 근대화 운동사상 획기적 의미를 갖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나아가 조사시찰단 조사와 수행원들에게 일본시찰 경험이 국민국가수립 혹은 서구 기술과 무기체계의 수용을 도모할 필요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의 국가구상은 이후 조선의 정치⋅사회에도 적
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조사시찰단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크다. 그러나 시간적으로는 10년의 간격이 있는 이와쿠라 사절단과 비교해 볼 때 그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양자의 비교를 통해 구한말 우리의 서구 문물 수용 노력의 한계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고의 목적은 한 세기 전 한국인들이 주체적으로 근대국가를 수립하는데 실패한 이유를 조사시찰단과 이와쿠라
사절단의 근대 체험에 보이는 차이점 등을 살펴봄으로써 구명(究明)해보려는 데 있다.

중국어

1881年朝士視察團和1871年岩倉使節團曾視察了先進外國之近代文物制度, 又其所見聞的東西反映了本國改革, 此可謂韓日兩國近代化運動史上劃時代的事件. 尤朝士視察團謀求了韓國歷史上正式收容西歐近代文物, 進而把日本設定了朝鮮近代化之模型. 日本視察經驗給於朝士視察團朝士和隨從人員國民國家樹立或者西歐技術和武器體系收容謀求之必要性的自覺轉機.他們的構想影響了以後朝鮮政治社會上. 可比較起與時間上間距10年的岩倉使節團,露出了不少薄弱的部分. 通過此兩個事件, 朝鮮末期韓國的西歐文物
收容努力之界限. 故本篇論文上探討, 1世紀前韓國人之主體的近代國家樹立失敗原因在於朝士視察團和岩倡使節團近代體驗之差踞上.

목차

<논문 요약>
 Ⅰ. 서 론
 Ⅱ. 조사시찰단과 이와쿠라 사절단이전 견외사절의 근대문물 이해
 Ⅲ. 조사시찰단과 이와쿠라 사절단의 면면
 Ⅵ. 결 론
 <참고 문헌>
 <漢文 提要>

저자정보

  • 허동현 許東賢. 경희대 수원캠퍼스 교양학부 부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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