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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闍崛山門系 고승과 禪宗界

원문정보

Activities of Buddhist Masters in Sakulsanmoon (闍崛山門) in the period of Early Koryo Dynasty

고려전기 도굴산문계 고승과 선종계

황인규

한국선학회 禪學(선학) 제17호 2007.08 pp.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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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aims to trace on activities of buddhist Masters of Sakulsanmoon's Budddhism sect(闍崛山門) in the period of ealry Koryo dynasty.
Meanwhile the lack of historical documents on Moks makes it difficult for us to study on their religeous thought as well as their actvities. On examining the historica l documents available regarding them, one mayeasily find that their activities were mainly connected on existences and aspects of the contemporary Buddhism.
They were leaders of Buddhist in early Koryo dynanasty such as Yeocheol(如哲), Dosun(道詵),
Yanggyeong(讓景), Seocho(釋超), Younghyun(領賢), Damjin(曇眞), Tanyeon(坦然) etc.
They were also disciples of Haengjeok(行寂) and Gaecheok(開淸). One of them, Bumill(梵日) had founded Sakulsanmoon's Budddhism sect(闍崛山門) that was consisted of Buddhist Masters.
Because They had done buddhist activities in Gaegyeong(開京) and Namkyeong(南京), Damjin(曇眞), his disciple Tanyeon(坦然) was appointed National Preceptor(國師) and Royal Preceptor(王師) respectively.
Since Choeung(祖應), a central place of activities of Sakulsanmoon's Budddhism sect(闍崛山門) was Yongmoonsa(龍門寺) in Yecheon(예천), but Yeondam(淵湛) was gone into exile by the Millitary Government.
Therefore Sakulsanmoon's Budddhism sect(闍崛山門) was hard to cope with the situation. Fortunately, Master Chinul had succeeded to Sakulsanmoon's Budddhism sect (闍崛山門).
In conclusion, Buddhist monks of Sakulsanmoon's Budddhism sect(闍崛山門) had taken the lead among Koryo's Budddhim sects.

한국어

본 연구는 고려전기 闍崛山門의 사세를 고승을 중심으로 살펴본 논고이다. 그동안 사룩산문에 대한 중요한 연구성과 가운데 하나는 고려 건국후 고려중기 慧照國師 曇眞과 大鑑國
師 坦然이 禪宗을 부흥할 때 까지 침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라말 사굴산문 성립후 梵日의 양대 문도라고 할 行寂과 開淸의 문도들이 고려초이래 광종대는 물론이고 예종․ 숙종대 담진이 등장할 무렵까지 활동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행적의 문도 讓景 등은 고려 광종 15년 무렵까지, 그리고 開淸의 문도인 眞觀釋超와 그의 문도들이 활동하였다. 한편으로는 如哲은 고려건국의 秘要를 가르쳐 주는 등 성종대 무렵까지 開京과 南京의 神穴寺나 僧伽窟을 중심으로 近畿地方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釋初는 강주 지곡사와 개경의 10대 사찰인 龜山寺와 普濟寺에서 15년간 활동하면서 선종계를 주도하였다. 그의 문도들은 大覺國師 義天의 천태종단 개창시 편입되었다가 다시 복구되는 적도 있었지만 개경 龜山寺 주지를 지낸 領賢은 南京의 僧伽窟 일대에서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이러한 사굴산문승들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고려중기 慧照國師 曇眞과 그의 제자 大鑑國師 坦然이 王師나 國師에 책봉되는 등 불교계를 주도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동안 ‘고려중기 선종계 復興’이라는 기존의 연구는 고려전기 사굴산문승의 활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또한 사굴산문은 대감국사 탄연의 제자 孝惇(斷俗寺)과 손제자 祖應(醴泉 龍門寺)代이이후 기울어 갔지만 사굴산문 宗暉를 득도사로 출가한 普照國師 知訥이 수선사를 개창한 후 사굴산문의 주류가 되었고 고려후기 선종계를 주도하였다는 것이 본고의 대체적인 줄거리다.

목차

1. 머리말
 2. 고려초 선종계 활동 양상
  1) 고려초 讓景과 眞觀釋超
  2) 屈山僧 如哲과 道詵國師
 3. 고려 중기 선종계의 주도와 浮沈
  1) 南京 僧伽窟 領賢과 眞觀釋超의 문도
  2) 慧照國師 曇眞과 그의 문도 大鑑國師 坦然
  3) 醴泉 龍門寺 고승 祖應과 그의 문도
 4. 맺음말
 국문 요약문
 영문 요약문
 참고 문헌

저자정보

  • 황인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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