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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능행의 용악 연구 -영조ㆍ정조ㆍ순조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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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se of Music for Neunghae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Focusing on the Reigns of Yeongjo, Jeongjo, and Sunjo-

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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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investigates musical practices and norms during late Joseon royal tomb processions (Neunghaeng, 陵幸) from King Yeongjo to King Sunjo, based on records like Seungjeongwon Ilgi, Gukjosogoryeui and Chungwan Tonggo. First, the Naechwi (內吹, Court Wind and Percussion Band) emerged as the core ensemble, responsible for signaling (Hyeongmyeong, 形名) and performing Chwita (吹打), often collaborating with military bands. Second, King Jeongjo introduced the Gyeomnaechwi (兼內吹) system to expand the ensemble’s scale, enhancing the dignity of the Eojeon Chwita (御前吹打). Visual evidence in the Geumui Sanneung Dongga Banchajido confirms the Naechwi’s expanded presence around the royal carriage. Third, during King Sunjo’s reign, spatial norms restricted Chwita performances to the area between the capital walls and the tomb entrance, reflecting Confucian restraint. Ultimately, Neunghaeng music functioned as a ceremonial medium, harmonizing royal military authority with Confucian order through strictly regulated spatial and functional applications.

한국어

본 연구는 『승정원일기』, 『국조속오례의』, 『춘관통고』 등의 문헌을 분석하여 영조대부터 순조대에 이르는 조선 후기 능행에서 용악(用樂)의 실제 양상과 규범을 고찰하였다. 나아가 이를 통해 능행에서 음악이 연주된 당시의 맥락과 인식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먼저, 조선 후기 능행에서 주악을 담당한 핵심 악대가 내취(內吹)였음을 확인하였다. 조선 전기 『국조오례의』 소가노부(小駕鹵簿) 전부고취(前部鼓吹)의 수가(隨駕) 규정에도 불구하고, 영조대부터 내취는 관악기와 타악기로 형명(形名) 신호를 보내고 취타(吹打)를 연주하는 핵심 악대로 기능했으며, 특히 환궁길의 군사훈련 시에는 여러 군영 악대와 함께 연주하였다. 다음으로, 정조대에는 능행 횟수 증가에 따른 내취 규모 확대의 필요성으로 겸내취(兼內吹)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이로 인해 어전취타(御前吹打)의 위용이 확대되었다. 각 군영 취타수를 동원한 겸내취는 내취 인원 부족 해소와 더불어 어가(御駕) 호위 취타의 격식을 강화하는 조치였으며, 이는 『춘관통고』의 ‘금의산릉동가반차지도(今儀山陵動駕班次之圖)’에 내취가 어가의 앞뒤 두 위치에 배치된 양상으로 확인된다. 마지막으로, 순조 25년 건원릉(健元陵) 능행 사례를 통해 취타 연주가 도성 밖에서부터 능이 위치한 동구(洞口)까지만 연주된다는 공간적 규범이 적용되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용악의 제한은 성내에서의 군사 행동 자제와 능소에서의 삼가야 함을 강조하는 유교적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조선 후기 능행은 내취를 주축으로 여러 군영 악대가 함께 취타를 연주하는 의례의 장이었으며, 능행 취타는 왕의 군사적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도성과 능소라는 특수 공간에서 엄격히 제한됨으로써 왕실 권위와 유교적 질서를 음악적으로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운용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영조대 능행에서 내취와 군영악대의 연주 양상
3. 정조대 능행에서 어전취타로서 내취의 연주
4. 순조 25년 건원릉 능행 사례를 통해 본 능행 용악
5. 나가며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임영선 Lim, Young-Sun.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객원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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