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Following the mid-19th century Treaty of Beijing, Russia annexed the territories east of the Ussuri River(烏蘇里江) and the Binhai region(濱海邊疆區). However, the treaty alone could not immediately displace the long-settled Chinese population, nor were there policies to integrate them as Russian citizens. Russian residents were scarce, while Chinese laborers and farmers from inland China formed the majority, especially in Amur Province(阿穆爾州) and the Binhai region, contributing significantly to urban construction and regional development. In Chinese scholarship, these settlers are referred to as Lü’e Huaren (旅俄華 人,Chinese in Russia), yet research on them remains limited compared to Southeast Asian Chinese communities. Migration patterns varied over time: initially welcomed by Russian authorities, Chinese settlers later faced stricter controls due to population growth and strong communal cohesion. Chinese migrants primarily worked in agriculture, mining, and labor-intensive industries. Long-term settlers cultivated land for subsistence, sold surplus produce, and some leveraged trade networks to accumulate wealth, positively impacting local food supply and economic growth while attracting official scrutiny. The Far Eastern Chinese community maintained traditional culture and Confucian norms, forming local self-governing associations to protect communal interests. However, some groups engaged in exploitative practices, prompting Russian authorities to expand regulation and surveillance over all East Asian migrants.
한국어
19세기 중반 『北京條約』 체결 이후, 러시아는 우수리강 동쪽과 빈해변강구 지역 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였다. 그러나 문서상의 조약만으로는 오랫동안 이 지역에 거주해 온 중국인을 즉각 퇴거시키기 어려웠으며, 이들을 러시아 시민으로 통합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역시 마련되지 않았다. 당시 극동지역 거주 러시아인은 극 히 일부에 불과했으며, 중국 내지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노동자와 농민으로 인 해 해당 지역은 ‘국중지국(國中之國)’으로 불릴 만큼 중국인의 비중이 높았다. 이들 은 주로 교통이 발달하고 개발 우선지역으로 지정된 아무르주와 빈해변강구에 집 중 거주하며, 도시 건설과 각종 인프라 사업에 대규모로 투입되었다. 중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극동 거주 중국인을 ‘여아화인(旅俄華人)’으로 지칭하며, 남양 화교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술적 탐구가 제한적이다. 이는 여아화인의 이주 시기가 비교적 늦고, 규모가 적었으며, 정치적 변동과 강제 이주, 중·러 관계 의 변동성 등으로 인해 연구가 소극적으로 이루어져 온 결과로 해석된다. 여아화인 의 이주 및 거주 양상은 시기별로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초기에는 러시아 당국이 극동 개발을 위해 중국인의 유입을 환영했으나, 인구 증가 속도와 강한 결속력으로 인한 통제상의 어려움이 확인되자 규제를 강화하였다. 이후 개발이 안정기에 접어 들면서 제도와 법령을 통해 유입 규모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극동에 거주한 중국인들은 주로 농업, 채집, 수렵, 금 채굴, 양조업 등 육체적 노동이 요구되는 분야에 종사하였다. 장기 정착자는 비옥한 토지를 개간하여 자급 자족 생활을 유지하고, 잉여 생산물은 시장에 유통하여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였다. 일부는 상업적 감각과 유통망 운영을 바탕으로 가격을 조절하고 무역로를 개척하 여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제 활동은 지역의 식량 공급과 경제 성장에 기여했으나, 동시에 러시아 당국의 경계 대상이 되었다. 한편, 극동 화인사회는 전통문화와 유교적 생활 규범을 유지하고자 하였으며, 지역별 자치조직을 통해 러시아 당국과의 관계를 조정하고 집단의 권익을 보호하였 다. 그러나 일부 조직에서는 자민족 착취나 인신매매 등 부정적 행위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중국인뿐 아니라 황인종과 이민족 전체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강화하였다.
목차
Ⅱ. 이주 동기·경로 및 초기 화인의 분포
Ⅲ. 이주 시기 구분과 이주민의 성격
Ⅳ. 화인의 직종 양상
Ⅴ. 화인사회의 생활상
Ⅵ.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