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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輯 論文 - 선과 천태의 정토관 -

의통 천태정토교의 성립과 그 내용

원문정보

The Ideological Essence of Uitong’s Tientaipureland

최동순(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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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Uitong(義通)'s previously unknown Tientaipureland(天台淨土) thought was restored in this study. Uitong was a Buddhist monk from the Goryeo Dynasty, who entered China and later became the 16th Great Master of the Tiantai Order. He entered Mt. Tientai, Zhejiang Province, China to study abroad in 947. Prior to that, he completed Hwaum and Qixin at Gusanwon in Gaegyeong, Goryeo. He went to meet Deshao(德韶) master in Mt. Tientai first. Uitong recognized Seon's meanings after being taught by deshao. At the time, Uitong witnessed Fayan order yanshou studying Tientai order. Uitong also switched to Yiji under the Tientai Order to learn Tientai study. In 961, country Wuyue helped develop Tientai order. At this time, Uitong participated in the task at luoxiyuan(螺溪院). Uitong, who finished his Tientai study in China, tried to return to Goryeo. However, the governor of city mingzhou (currently ningbo) requested Uitong to stay. Uintong launched the Tientaipureland movement there. The theoretical foundations are logic guanxinshi(觀心釋), discipline of wangxinguan(妄心觀), theory xingjushuo(性具說), etc. And it is xiangren(鄕人) theory that can see his theory of practice. Uitong produced two students, zhili(知禮) and zunshi(遵式). The two promoted Tientaipureland in Mingzhou (currently ningbo) and Hangzhou. Since then, Tientaipureland has developed greatly throughout the Song, Yuan, and Ming eras of China. Uitong's Tientaipureland was also introduced to Goryeo and contributed to Korean Buddhist culture.

한국어

고려 출신의 의통(義通, 927~988)은 오월에 유학했다가 천태종의 역대조사로 추대되었다. 그가 외국인 승려임에도 후예들은 시조, 비조 혹은 교주 등으로 칭했다. 이는 천태종 발전의 전환점을 제공한 때문이다. 의통은 보운사를 개산(968)하고 민간에 유행하던 정토신앙을 천태종으로 수용했다. 난해한 천태지관 대신 정토신앙을 활용하여 정토 관법을 수립했고 이후 종파는 융성했다. 의통이 화엄과 기신을 섭렵하고 천태산에 유학하여 법안선을 수습했지만 천태종과 정토신앙으로 전향했다. 오월왕 전숙의 천태종 부흥 과제에 합류한 의통은 나계원에서 활동한 후 영파 보운사에서 천태정토교를 펼쳤다. 의통의 저술이 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원영이 승전인 『종원록』(1113)을 지으면서 준식과 지례를 비판했다. 그리고 제자 지례는 스승의 사상을 계승했다고 여러 책에서 밝히고 있으므로 그의 저술에서 의통 사상을 복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연구 내용의 첫째는 『금광명경현의』의 관심석을 채택하여 교판을 정토신앙과 일치시킨 점, 둘째는 망심관경을 제시하여 범부의 신행이 천태실상론과 연계됨을 논증한 것, 셋째는 본시성불론을 기반으로 성구설을 구체화한 것, 넷째는 정토관경의 수립이며, 다섯째는 향인을 통한 정토운동의 본질을 탐구했다. 의통이 채택한 관심석의 십종삼법 교판은 이후 영파의 산가파와 항주의 산외파 간의 논쟁을 일으켰고 수십년간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의통 천태정토교는 정체성과 선명성을 제고했고 인재들을 배출했으며 절강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그 논쟁의 시작점이 지례가 아니라 의통·오은이라는 점을 본 논문에서 제시했다. 의통이후 천태종은 이행도인 염불수행을 수용했고, 이는 고려 천태종을 개립하는 배경이다. 그 문화를 남송 종효가 『낙방문류 』·『낙방유고』에 수록했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의통 천태정토교의 창시와 그 계승
1. 자료 부존의 배경과 사상 복원의 방향
2. 전향에 따른 천태정토교 성립 과정
3. 계승과 발전
Ⅲ. 천태정토교의 교판과 그 정체성
1. 십종삼법 교판 논쟁에 따른 망심관 수립
2. 성구설의 구체화
Ⅳ. 천태정토교의 사상적 본질
1. 정토경의 채택 과정
2. 향인에 의한 정토운동과 그 효과
Ⅴ.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최동순(안적) Choi, Dong-Soon(ven. An-juk).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초빙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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