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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논문】

19세기 강원도의 승려 화악지탁의 서간 연구

원문정보

A Study on the Letters of Buddhist Monk Hwaak Jitak in 19th-Century Kwandong(關東)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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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Sambongjip(三峯集), a collection of writings by Hwaak Jitak (華嶽知濯), who was active in the Gwandong (關東) region in the 19th century, contains 11 letters addressed to Yeonghe Seonyeong (暎虛善影). These letters provide insight into the interaction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Hwaak and Yeonghe were both members of the Hamwol Haewon (涵月海源) lineage, which was associated with Seokwangsa (釋王寺) Temple on Seolbongsan (雪峯山) Mountain. As Yeonghe’s uncle and mentor, Hwaak taught him Zen meditation, and Yeonghe later recognized him as his 'teacher of Buddhist doctrine (法師)'. Hwaak’s high regard for Yeonghe was influenced by the Confucian emphasis on genealogy. In the letter "Giving to Yeoksan" (與櫟山書), Hwaak equated the truth of the Chapter on the Duration of Life of the Tathāgata in the Lotus Sutra with a phrase from the Śūrańgama Sutra: “To uphold a myriad of worlds with such a deep heart, this is called to repay the grace of the country” (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國恩). This phrase, widely known among Confucian scholars due to Zhu Xi, originally referred to 'the grace of the Buddha', but Hwaak reinterpreted it as 'the grace of the country'. This shift reflected Yeonghe’s role in royal prayer rituals and the pre-existing national character of Joseon Buddhism. Hwaak also asserted that the meaning of supporting the world (奉塵刹) could only be fully understood through study. He referenced Zhu Xi and Lee Choong-ik (李忠翊), both of whom cautioned against secular language. Zhu Xi’s view on secular language is recorded in Siin-Oksseol (詩人玉屑), a poetry critique that Hwaak likely recommended to Yeonghe. Although poetry critique was generally classified as secular language by Buddhist monks, Hwaak argued that it could still be read.

한국어

19세기 금강산과 인접 지역에서 활동한 화악지탁(華嶽知濯)의 문집 『삼봉집(三峯集)』에는 제자 영허선영(暎虛善影)에게 보낸 서간이 11통 게재되어 있다. 제자에게 보낸 화악의 서간을 통해 19세기 강원도 지역 승가 문화의 시공간적 특성을 고찰했다. 화악과 영허는 설봉산 석왕사에 주석했던 함월해원(涵月海源)의 문중에 속한다. 화악이 영허의 사숙(師叔)이 되는데, 영허는 화악에게 참선을 배워서 자신의 ‘법사’로 명시하였다. 서간 내용을 통해 화악이 영허를 중시한 이유를 알 수 있으니, 문중의 조사가 대를 이어 주석하여 ‘쌍명도량(雙明道場)’이라고 일컬어지는 석왕사에 영허가 주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글에서도 화악은 문중의 조사를 언급하였고 한편, 영허 문집에는 문계(門契)가 여러 편 실려있다. 문계는 이전 승려문집에는 보이지 않던 문체로서 19세기 승가의 문화 현상이다. 화악이 영허에게 보낸 서간 「역산에게 주다 [與櫟山書]」에서 화악은 『법화경』 「수량품」의 진결이 『능엄경』 권3의 구절 “이 깊은 마음으로 진찰을 받드니 이를 일러 국은에 보답한다고 한다. [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國恩]”라고 하였다. 본래 『능엄경』에는 ‘불은(佛恩)’이라 했는데 화악은 ‘국은(國恩)’이라고 했다. 이렇게 바꾼 이유는 영허가 임금을 위해 기도하는 소임을 맡고 있기 때문인데, 왕실과 깊은 관계에 있는 조선불교의 호국적 성격을 엿보게 된다. 화악은 『능엄경』 구절 ‘진찰을 받든다 [奉塵刹]’의 의미는 독서한 연후에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세속언어를 경계하는 주희와 이충익의 언급을 인용했다. 세속언어를 경계하는 주희의 언급은 사실 『시인옥설(詩人玉屑)』에 인용된 표현이다. 화악은 제명을 명시하지 않은 시평(詩評)을 영허에게 필독하라고 보냈는데 『시인옥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평은 승려들에게 ‘세속언어’에 속하지만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고 권하였으니, 이는 유불 교섭에 따른 현상이다. 유자보다는 도반과 교유한 흔적이 많은 점은 다른 승려문집과 비교할 때 강원도라는 지역적 특징과 관련이 깊다. 국은을 강조하고 시평을 독서하라고 권하는 면모들은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례에 해당한다. 특히 시평의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이전 기록에 보이지 않던 현상이라는 점에서 19세기 승가 문화의 특성이라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화악과 수신자 영허의 관계
3. 서간에 담긴 승가 문화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이대형 Lee, Dae-hyung.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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