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summarizes the records of the folk and royal performance of
한국어
이 연구는 가창 가사 『관동별곡』의 연행을 바탕으로 생성된 <관동무>의 민간, 궁중 연행의 기록과 궁중 유입의 배경을 총괄 정리하여 향후 <관동무>와 같이 지방에서 생성된 향악정재에 관한 연구와 재현 작업의 기초 자료를 마련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관동무>는 1580년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지어 관기들에게 노래하고 춤추게 한데서 비롯하였다. 정철은 가뭄과 수해로 피폐해진 강원도의 풍속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관동별곡』을 지었고 이는 춤과 놀이의 형태로 전파되 었다. 가무의 형태를 띠며 민간에서 연행된 <관동무>는 17세기 중반으로 문집의 기록에서 볼 수 있고 19세기 초 『관동별곡』의 영향으로 궁중에서 향악정재 의 모습을 갖추고 연행된 기록은 헌종 조 창경궁 통명전에서 설행(設行)된 연향을 기록한 『무신진찬의궤』에서 볼 수 있다. 1인 또는 2인무의 형태로 민간에서 연행된 <관동무>가 궁중으로 유입된 배경은 첫째, 조선시대 이속의 역을 수행한 ‘외방기’와 ‘선상기’가 존재한 까닭이다. 그들은 민간과 민간, 민간과 궁중의 활발한 문화교류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둘째, <관동무>의 노랫말인 『관동별곡』은 19세기 초 가창 가사로 널리 성행하였다. 성현의 작품으로 당대 최상위 문화권에서 향유된 『관동별 곡』의 영향으로 <관동무> 또한 궁중으로 유입되어 연행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조선 후기 군왕들은 세도정치로부터 왕권을 확립하고 군신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관동별곡』의 주제는 정치 주체의 의도와 부합하는 내 용의 노랫말이었고 그것을 표현한 <관동무>는 규모와 형식을 확대 발전시켜 궁중으로 유입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신진찬의궤』에 기록된 세취 편성의 성악곡 연주로 8인의 무원이 4명 씩 두 줄로 서서 ‘俯仰旋轉’하고 ‘進退旋轉’하며 노랫말을 형상화하며 추는 <관동무>는 <봉래의>의 8인 구성 형태의 정재무 <취풍형지무>와 유사점을 보인다. 홀기(笏記)가 남아있지 않기에 춤의 구성과 형태를 알 수 없다. 다만 남아있는 <관동무>의 ‘작대도’로써 춤의 전체적 진행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논문은 기록이 소략하여 연구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던 <관동무>에 대한 연구와 재현을 위한 기초 자료를 정리한 데 그 의의를 둔다.
목차
1. 서론
2. 가창 가사 『관동별곡』
3. <관동무>의 노래 『관동별곡』의 연행
4. <관동무>의 민간 연행기록
5. <관동무>의 궁중 연행 기록
6.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