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본고는 정일당(貞一堂) 벽진 이씨(碧珍 李氏, 1810~?)의 생애와 효절 추모시를 살펴보았다. 정일당의 효열(孝烈)은 한 개인과 가문의 영광만은 아니다. 따라서 정일당의 아름다운 효행 행적을 널리 알리고 추모하고자 2024년 결성장씨동우공파종중(結城張氏東雩公派宗中)과 상촌장학회(常村 奬學會)가 「讚貞一堂碧珍李氏孝節 全國漢詩白日場」을 개최하였다. 백일장 에 300여 首 이상 접수되었는데 본 논문은 그 추모시를 텍스트로 하였다. 추모 한시는 정일당을 중국의 진효부(陳孝婦)와 소군(少君) 등에 견주 었다. 그녀가 사문(士文) 장회진(張會鎭, 1808~1835)을 여의었을 때 슬픔 을 딛고 태임(太任)과 태사(太姒)의 부덕(婦德)을 함양하고 장씨 집안을 일 으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추모 한시들은 주로 생애와 효열 공적 을 칭송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는 만큼 유형성에 있어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고 변주되는 특징을 보였다. 정일당의 행장과 효열 행적은 「華西先 生文集」, 「孝節婦孺人碧珍李氏紀行碑銘」(李之渢), 「東雩張會鎭先生墓誌銘」(李恒老), 「書贈外孫婦沈」(李恒老), 「孺人碧珍李氏墓表」(閔丙承), 「孝子東 雩張會鎭․孝節婦碧珍李氏追慕碑文」(安商燮), 「結城張氏竪碑記」(張基德) 등 에 기록되어 있다. 짧은 비문이나 묘지명은 고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 러내므로 강한 내용이 담긴 명(銘)이 많다. 세상이 어지럽고 집안의 화재 로 인하여 정일당이 남긴 시문과 그 외 기록들이 사라졌으나 다행히 비문 (碑文)이나 묘지명(墓誌銘) 등에 의해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였다. 정일당의 효절(孝節) 추모시를 살펴보았다. 먼저 성효(誠孝)의 정신에서 붕성지통(崩城之痛)을 당한 정일당을 부모를 극진히 모신 진효부로 비견 했다. 절의(節義) 정신에서 정일당은 남편에게 단지음혈(斷指飮血)하였으 나 끝내 소생하지 못했고, 남편을 따라 자진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단지와 순절하려는 행위 이후 죽은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킨 수 절은 당시 열녀에 해당하며 절개와 의리를 지킨 여인의 충절이다. 그리고 남편 동우공이 평소 학행일치(學行一致)한 것처럼 정일당 또한 성효와 절 의에서 비롯된 부도(婦道)의 실천으로 선비다운 여인의 면모를 보였다. 이 렇게 정일당 벽진 이씨의 효절이 빛나는 것은 성효와 절의를 통하여 부도를 실천하였다는 점과 죽은 남편의 자리를 대신하여 가문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남편을 따라 순절한 바와 진배없는 효절이다.
목차
1. 서론
2. 정일당(貞一堂)의 생애
3. 효절(孝節) 추모시(追慕詩) 작품 분석
(1) 성효(誠孝)의 정신
(2) 절의(節義)의 정신
1) 충절(忠節)
2) 정절(貞節)
(3) 부도(婦道)의 실천
4. 결론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