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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주제 : 젠더 프리즘으로 바라보는 한국어문학 - 고(故) 김미현 문학 연구 톺아보기

발화(發話)하는 죽음, 면천(免賤) 조이[召史]의 명정(銘旌)

원문정보

Death that Speaks: Myeongcheon (免賤) Jo-yi[召史]'s Myeongjeong (銘旌)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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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article is a process of narratively reconstructing the life ignited by the death of Kwak Jo-yi, focusing on Kwak Jo-yi's famous painting “免賤海南召史之柩” excavated from the tomb site in Kwaebin-ri, Goryeong. Kwak Jo-yi’s memorial ceremony (銘旌式) “免賤+海南+郭+Jo-yi[召史]+之柩” followed the aristocratic woman’s memorial ceremony “封爵+貫鄕+姓+氏+之柩”. According to Myeongjeong, Kwak Jo-yi had a history of breaking away from the status of a low-class citizen, her hometown was Haenam, and it can be seen that she came to be called ‘Jo-yi’, a title for women of the common people, after she was transferred to Myeon. She was the concubine of a noble family named Kwak Jo-yi, and appears to have had considerable property of her own. This is because the style of Kwak Jo-yi's tomb is a walled tomb mainly used by the noble class, and the excavated clothing and crown items are similar to those of the wives of noble families. In addition, the fact that her height is equal to the average height of a man and her teeth are in fairly good condition can prove that she is financially well-off. Kwak Jo-yi's famous speech is interpreted as a polyphonic speech act, and voices from various positions can be inferred from it. Firstly, Kwak Jo-yi, who was her concubine but contributed economically to her family and passed on her property to her enemy children, was treated with respect no higher than that of her first wife. It's a voice. The second is the voice of her biological children, who may have tried to announce that she was not the illegitimate child of a concubine, but the illegitimate child of a concubine, by revealing her mother's history in her royal address. The last is Kwak Jo-yi's own voice, as she attempted to define her own life through her will. Myeongjeong's nine letters contribute to the narrative reconstruction of Kwak Jo-yi's life with a multi-layered and polyphonic voice, while at the same time testifying to the social situation of her time. These nine letters are small fragments dropped by great history, but within them we can discover voices that read the relationship between women and the times. We hope that this discussion will be deepened and expanded in the future through additional tomb excavations and research on family records in the area.

한국어

이 글은 고령 쾌빈리 분묘 유적에서 출토된 곽조이의 명정 “免賤海南郭召史之柩”을 중심으로 곽조이의 죽음이 발화하는 삶을 서사적으로 재구 해 가는 과정이다. 곽조이의 명정식(銘旌式) “免賤+海南+郭+조이[召史]+之柩”는 양반가 여성의 명정식 “封爵+貫鄕+姓+氏+之柩”를 따른 것이다. 명정에 따르면 곽조이는 천민의 신분을 벗어난 내력이 있고, 본관이 해남이며, 면천 후 양민 여성의 호칭인 ‘조이’로 불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곽조이는 양반가의 첩이었고, 자기 재산도 상당히 지녔던 것으로 보인 다. 곽조이의 분묘 양식이 양반층에서 주로 사용하는 회곽묘이고, 출토된 복식과 치관(治棺) 물품이 양반가 부인들의 수준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 외 신장이 남성의 평균 키와 같고 치아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는 점 등이 경제적 여유를 방증할 수 있다. 곽조이의 명정은 다성적 발화행위로 해석되며, 그것에서 여러 입장의 목소리를 유추할 수 있다. 첫째는 첩이지만 집안에 경제적인 기여를 하고 적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준 곽조이에 대해 정실 부인을 넘지 않는 수준에 서 예우하려 했을 양반 배우자와 적자녀의 목소리이다. 둘째는 명정에 모 친의 면천 내력을 밝힘으로써 자신이 천첩 소생 얼자녀가 아니라 양첩 소 생 서자녀라는 것을 공표하려 했을 친생 자녀의 목소리이다. 마지막은 유 언을 통해 자기 삶을 스스로 규정하고자 했을 곽조이 자신의 목소리이다. 명정의 아홉 글자는 중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로 곽조이의 삶을 서 사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동시에 당시의 사회상을 증언한다. 이 아홉 글자는 거대 역사가 떨군 작은 파편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여성 과 시대의 관계를 읽는 목소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추후 추가적인 분묘 발굴 작업과 해당 지역의 호적 연구를 통해 본 논의가 심화 확장되기를 바란다.

목차

<국문개요>
1. 면천해남곽조이지구(免賤海南郭召史之柩)
2. 곽조이[郭召史] 삶의 서사적 재구성
3. 발화(發話)하는 죽음 : 명정(銘旌)에 남긴 목소리(들)
4. 여성 명정(銘旌)의 발화성과 주체적 죽음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수연 Kim, Soo-youn.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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