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A Study on the Ideological Background of Ubok Jeong Kyung-se's (鄭經世) Governing Theory : Focusing on the Awareness of “Inequity (不均)” and the Sajoksuporon (士族收布論)
초록
영어
This article investigates Jeong Kyung-se's (鄭經世) Governing Theory and its ideological background. He was influenced by his mentor Ryu Seong-ryong (柳成龍) and the “inequity (不均)” issues during the ‘gongmuljakmi (貢物作米)’ system in the Imjin War (Japanese invasions of Korea). Jeong Kyung-se's Governing Theory covered political administration and institutional reforms, especially the Sajoksuporon (士族收布論) proposed after the Jeongmyo War (First Manchu Invasion) to address the military threats posed by the Later Jin (Qing dynasty) and promote equitable labor distribution (Gyunyeok, 均役). Especially, the abolition of the Naesusa (內需司) presented as a precondition during this process was a measure to limit the king's private power. This, like the Sajoksuporon, was a mechanism to resolve inequity (不均), an ideal goal of Confucian political thought. The above-mentioned actions marked the starting point for later institutional discussions related to Gyunyeok and represented the first attempt to limit even the monarch's private power, positioning Jeong Kyung-se as a pioneering figure in the trend of Governing Theory in the late Joseon period. Jeong Kyung-se's ideas influenced both his faction, the Nam-in (南人), and the Seo-in (西人), significantly impacting Korea's political landscape and the evolution of political thought.
한국어
본 논문은 정경세(鄭經世)의 경세론과 그 사상적 배경을 고찰한 것이다. 정경세는 류성룡(柳成龍)의 제자로서 사상적 관점에서 그의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공물작미(貢物作米)’의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불균(不均)’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류성룡의 현실 인식과 경세론을 계승하였다. 정경세의 경세론은 정치 운영 문제부터 구체적인 제도 개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정묘호란 직후 주장한 사족수포론(士族收布論)은 후금(청)의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 ‘불균’을 극복하여 ‘균역(均役)’을 실현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결 조건으로 제시된 내수사(內需司)의 폐지는 국왕의 사적 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로서 사족수포론과 마찬가지로 유교 정치 사상의 이상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불균의 해결을 위한 장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후일 균역과 관련한 제도적 논의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것으로 군주의 사적 권력까지도 제한하려 한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경세론의 흐름에서 선구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당파인 남인(南人)뿐만 아니라 서인(西人)의 경세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류성룡의 ‘불균(不均)’ 인식과 정경세의 불균 인식 계승
3. 사족수포론(士族收布論)과 ‘불균’ 인식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