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SeolbongCheonbo, born in 1592, became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creation of the Bongseonsa bell (now at Gapyeong Hyeondongsa Temple in Gyeonggi Province) in 1618 at the age of 27. The following year, he oversaw its production, marking the first of his works. His motivation for becoming a bell craft master stemmed from the knowledge of crafts required for a monk to achieve enlightenment as a bodhisattva. Active for roughly 15 years until his early 40s, SeolBongcheonbo left his mark on Gyeonggi, Hwanghae, and Hamgyong provinces. He personally supervised and directed the entire bell-making process, including calligraphy carving. A well-educated scholar skilled in the three arts (poetry, writing, and painting), SeolBongcheonbo possessed an outstanding aesthetic sense. Notably, he is the only Buddhist art master from the 17th century with a known birth year. His bells drew inspiration from 15th-century royal-sponsored bells influenced by Chinese models, such as the Bongseonsa bell (1469) and the Haeinsa bell (1491). He further incorporated design elements from scripture paintings, including sutra covers and repair drawings, from th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to create his unique style. Visually, Seol- Bongcheonbo’s bells feature large, dynamic, and realistic dragons. He divided the well-proportioned bell body into upper and lower sections using bold horizontal lines. A defining stylistic feature is the majestic pattern that begins with a lotus flower gate, followed by a trapezoidal lotus gate, a bodhisattva figurine, a bumjumun gate, and a plaque at the top. The lower section progresses from an S-shaped arabesque gate with a protrusion to a Yeonhwa dangchomun gate, a juzongi, and finally an unryongmun (wave gate). His influence extended to other 17th-century bell craft masters, such as Kim Yong-am and Kim Ae-lip. Bell Craft Master SeolBongcheonbo’s who was active in the 17th century. SeolBongcheonbo’s innovations in bell making played a crucial role in bridging a potential gap in Korean bell-making traditions due to wartime disruptions.
한국어
설봉천보는 1592년에 태어났다. 그는 27세였던 1618년에 범종의 제작을 위해 스스로 發願者와 化主가 되었고, 이듬해 1619년 <봉선사 범종>(현재 경기도 가평 현등사 소장) 제작을 처음으로 진행하였다. 그가 주종장으로 활동한 이유는 승려가 보살이 되기 위해서 필요했던 工巧明을 체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40대 초반까지 약 15년간 경기도, 황해도,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 였다. 그는 사적기 형식의 주종기 찬술을 비롯하여 書刻과 鑄鍾 등 범종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총괄·감독하고 지휘하였다. 그는 三絶(詩·書·畵)에 모두 능했던 學識이 높은 學僧이자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닌 예술가이며, 아울러 17세기에 활동한 수많은 불교미술장인 중에서도 출생 연도 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1469년 <봉선사 범종>, 1491년 <해인사 범종> 등 중국 종의 영향을 받은 15세기 왕실 후 원 범종을 모본 삼아 조선전기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고려·조선시대의 사경표지화와 변상도 등 경전화의 삽입된 도안도 함께 학습하여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범종을 완성하였다. 그가 제작한 범종은 외형적으로 쌍용의 종뉴를 크고 사실적이며 역동적으로 조각하고, 균형미를 갖춘 종신에 굵은 횡선을 이용하여 상단과 하단으로 구획한다. 특히, 귀꽃이 있는 연판문을 시작으로 상단에 사다리꼴 형태의 연곽, 보살입상, 범자문, 원패 등의 문양을 빈틈없이 채우고, 하단에는 돌기가 있 는 S자형 당초문, 연화당초문, 주종기, 운룡문 또는 파도문 등이 순서대로 이어지는 장엄 패턴은 그가 제작한 범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양식적 특징이다. 현존하는 17세기 주종장 가운데 김용암 과 김애립에게 그의 범종 양식 일부분이 반영되었기도 하였다. 설봉천보는 17세기에 활동한 주종장이다. 그가 범종의 제작 과정에서 보여준 창의적이고 새로 운 시도들은 자칫 전란으로 단절될 수 있었던 우리나라 범종 양식의 흐름을 이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목차
Ⅱ . 북한 소재 금사사 범종의 재검토
Ⅲ . 설봉천보의 생애와 범종의 현황
Ⅳ. 설봉천보 범종의 양식 특징
Ⅴ.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