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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九州)와 기나이(畿內)의 그리스도교 초기 선교 과정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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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ing the Early Christian missionary work in Kyushu and Kinai

유은주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제71호 2024.07 pp.26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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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Francis Xavier arrived in Japan in 1549 as envoy of the King of Portugal, papal ambassador, and head of the Jesuit province of India. There he employed a missionary method to convert ‘from the top down’ based on his missionary experiences in India and the Maluku Islands. His primary subjects of evangelization were the Tenno and Shogun. However, after witnessing the political realities of Japan in Kyoto, Xavier shifted his missionary focus to the Daimyo. While travelling to Kagoshima, Hirado, Yamaguchi, Kyoto, and Bungo, he realized that trade was more useful than politics in mobilizing Japanese people. His strategy was to change the unfavorable political climate for missionaries by using the arrival of Portuguese trading ships, and then to gain official permission for his mission. His plan to use trade for missionary purposes was realized by Cosme de Torres. After Xavier, Jesuit missionaries began to utilize worldly interests as their missionary weapon. Consequently the number of Christian Daimyo, beginning with Omura Sumitada, increased in the coastal areas of Kyushu and Shikoku. However, the political and religious situation in Kinai was different from Kyushu in many ways. Moreover, there was a limit of the missionary strategy based on trading profits in Kinai. The missionaries in Kyoto were confronted by Buddhist monks and intellectuals, whereas they were welcomed by the merchants of Sakai who sought their own commercial benefit. Under the chaotic and unstable circumstances of the Sengoku period, people longed for not only material and economic security, but also peace of mind. Even Buddhism could not fully satisfy their desire. This was an opportune time for Jesuit missionaries to preach peace through the forgiveness of sins and hope for life everlasting. The people understood and accepted Christianity based on their Buddhist philosophy. Even for the missionaries, the teachings of Buddhism appeared to be similar to those of Christianity. In order to spread the Christian doctrines, to win the battle in the Buddhist culture, the missionaries had to be armed with Christian theology and logic.

한국어

포르투갈 국왕의 사절 겸 교황 대사이자 예수회 인도 관구장으로서 일본에 첫발을 디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인도와 말루쿠 제도에서의 선교 경험을 바탕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선교’라는 방침을 정하였다. 그는 선교 목표는 천황과 쇼군이었지만 막상 교토에서 일본의 정치 현실을 목격하고, 중점 선교 대상을 다이묘로 바꾸었다. 하비에르는 가고시마, 히라도, 야마구치, 교토, 분고를 방문하여 일본인을 움직이는 데 정치보다 무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선교사에게 불리한 정치적 상황을 포르투갈 무역선의 입항으로 타개하는 동시에, 정식으로 선교 허가를 받아낸다는 전략을 세웠다. 무역을 선교에 이용하려는 그의 계획은 코스메 데 토레스의 손으로 실현되었다. 하비에르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이 세속의 이익을 선교의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규슈와 시코쿠 해안 지역에 오무라 스미타다를 시작으로 기리시탄 다이묘가 늘어났다. 그러나 기나이의 정치 종교 상황은 규슈와 여러모로 달랐다. 아울러 기나이에서 무역 이익을 앞세운 선교 전략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카이의 상인들 또한 상업 이익을 위해 선교사들을 환대하였지만 교토에서 선교사들이 맞닥뜨린 상대는 불교 승려들과 지식인들이었다. 센고쿠 시대라는 혼란과 불안한 상황 속에서 민중은 물질적 경제적 구제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을 갈구하였는데, 불교가 그 갈망을 채워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은 현세에서 죄의 용서에 따른 평안과 함께 내세의 희망을 제시하였다. 민중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불교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선교사들조차 인정할 정도로 불교와 그리스도교 교리가 유사하였으므로, 이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선교사들은 이제 신학과 논리로 무장해야 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다이묘와 선교사의 이해관계로 얽힌 규슈 — 무역과 선교의 일체화
Ⅲ. 기나이 선교의 발판 사카이 — 무역과 정치와 교양의 교차점
Ⅳ. 적응주의 선교의 무대 교토 — 신학으로 무장한 선교사
Ⅴ.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저자정보

  • 유은주 Yu, Eun-Ju. 한국외대 사학과 박사수료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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