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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의 고대사 편찬과 쇼군의 ‘무위(武威)’ - 대외관계적 관점에서 -

원문정보

Compilation of Ancient History in the Early modern era and the Shogun’s “BUI” (武威) - Focusing on External Relations -

장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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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device known as “Honchotsugan” played a crucial role in legitimizing the Tokugawa shogunate systems without objection. Additionally, the concept of “BUI” as the supreme ruler of Japan has roots in ancient history. Ancient Japanese rulers in East Asia showed “BUI” through military conquests (親征) or in the direct political (親 政) rule of the Japanese Emperor (天皇). Essentially, “BUI” symbolized the Emperor’s power and authority. Over time, this this authority shifted to the samurai world as the Emperor’s power waned, as evidenced by the genealogy recorded in “Honchotsugan”. In the early modern era of peace, “BUI” evolved into a ritualized virtue. In the early 17th century, the deification of Tokugawa Ieyasu aimed to establish his qualifications as Japan’s ruler, part of the Shogun’s direct political efforts. Concurrently, during the Kaihentai (華夷変態) transformation until the early 18th century, Arai Hakuseki sought to integrate ceremonial and virtuous aspects of “BUI” into the reorganization of international relations. This transformation emphasized the emperor’s ceremonial role in external relations, rather than military conquesst, emphasizing the diplomatic name of the shogun. These endeavors are significant because they relate closely to the compilation project of “Honchotsugan” in early modern Japan.

한국어

『본조통감』은 도쿠가와 막부체제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확보하는 하나의 장치라고 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일본 통치자로서 지녀야 할 전통적인 ‘무위’의 소재를 고대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 ‘무위’가 근세에 들어와 의례화되는 ‘덕’의 정치 로 변모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일본 통치자의 ‘무위’가 도쿠가와 쇼군의 ‘무위’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으며,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고대사 인식은 과거의 인식과 다르지 않았다. 하쿠세 키의 역사학이 하야시 가호의 가호사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여러 선행연구 에서 밝혀진 바 있으며 특히 『読史余論』의 ‘공가구변설’이 그러하다. 아라이 하쿠 세키는 일본 고대의 동아시아세계에서 천황의 親征 및 親政을 일본 통치자로서의 무위(武威)로 보고 있다. 일본 고대사회는 국내적으로 親政을 하고 대외적으로 親征을 하는 천황만이 가진 권력과 권위였고 이것이 발현된 시대였다. 그러나 시대 에 따라 점차 천황의 무위는 상실되어 갔고 이는 무사정권으로 이양되었다. 그러 한 과정을 『본조통감』의 계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격화 사업도 신국의 나라인 일본에서의 통치 자적 자격을 갖추기 위한 하나의 親政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작업이었고, 18세기 초까지 이어지는 화이변태기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화이중화질서에 편입되 지 않는 국제관계를 재편하고자 했던 일본은 親征이 아닌 외교 의례에서 쇼군의 ‘무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즉 동아시아세계에서 통용되는 국왕호를 쇼군의 외교 호칭으로 복호하면서 동아시아세계 속에서 일본국의 위치를 재정립하고자 하였으며, 이른바 추상화된 ‘무위’라고 할 수 있고, ‘무위’가 덕으로의 정치로 전환된 것이 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이러한 대내외적인 쇼군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 로, 근세 일본에서의 『본조통감』의 고대사 편찬 또한 큰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며
Ⅱ. 『본조통감』과 ‘무위(武威)’
Ⅲ. 아라이 하쿠세키의 ‘무위(武威)’
Ⅳ. 화이변태기와 대외관계적 쇼군의 ‘무위’ -일본국왕호-
Ⅴ. 나오면서
【참고문헌】

저자정보

  • 장혜진 Jhang, Hyejin. 가톨릭 관동대학교 Verum 교양대학 조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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