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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科文選集 『儷林』을 통해 본 科試 문체로서의 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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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銘) as a Literary Style Seen through the Late Joseon Dynasty Gwamun Collection 『Reolim(儷林)』

조선 후기 과문선집 『여림』을 통해 본 과시 문체로서의 명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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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the Late Joseon Dynasty Gwamun collection 『Reolim(儷林)』, and examine the value and meaning of this material. Through this, we will accumulate research on Myung(銘) as a literary style and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Myung, whose use in examinations increased especially during the reign of King Sunjo. Among the 255 types of Joseon civil service exam-related materials stored in the Korea University library, there are a total of 4 types of materials containing the Myung. Among them, 『Reolim』 can be said to be a ‘Gwamun Collection’ in terms of its proportions, and contains a large amount of answers to regular and irregular exams, listed in order of time and grade. In addition, it is a rare gwamun collection in that it mainly contains answers excluding the ‘Gwamun of Six Types’ that were often asked in exams. 『Reolim』 has material value in two aspects. First, with the 『Imheongongnyeong(臨軒功令)』, which is a comprehensive collection of answers submitted to various exams at the command of the state, it is possible to reconstruct the questions asked during the reigns of King Jeongjo and King Sunjo without any gaps in time. Second, it shows an example of an exam reference book from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was efficiently structured and edited for exam preparation.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Myung of King Sunjo’s reign through the introduction and material value of 『Reolim』, many of the Myungs of King Sunjo’s reign emphasized the king’s favor through images related to the names of buildings. Unlike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which included questions on various places and buildings, during the reign of King Sunjo, questions were limited to the names of buildings within Changdeokgung Palace and Changgyeonggung Palace, where the king mainly worked. It is presumed that this was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and emphasize the favor given to prospective officials. Additionally, from October to December 1811, unusually, questions with the title of the ceremonial flag were asked repeatedly. This can be regarded as an effort to calm public sentiment that was unstable due to poor harvests and disasters at the time.

한국어

본고는 조선 후기 科文選集 『儷林』을 소개하고, 이 자료의 가치와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그간 소략했던 과시 문체로서 銘에 대한 연구를 축적하고, 순조대에 특히 출제 비중이 높아진 銘의 특징을 밝히고자 한다. 고려대 도서관 소장 과시 관련 자료 255종 중에서 銘이 실린 과문선집은 4종이며, 그중에서도 『儷林』(건/곤)은 비율상 ‘銘 선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기 및 비정기 시험ㆍ월과ㆍ응제 등 방대한 분량의 銘 답안을 시기와 성적순으로 기재했다. 또한, 과 시에서 자주 출제되었던 科文六體(사서의ㆍ오경의ㆍ시ㆍ부ㆍ표ㆍ책)를 제외한 과시 답안을 위주로 실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과문선집이다. 『儷林』은 두 가지 면에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첫째, 국가의 명으로 각종 시험에 제출된 답안을 종합적으로 모은 『臨軒功令』(규장각한국학연구원, 奎11437)과 함께 정 조~순조 대에 출제된 銘을 시기적 공백 없이 재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儷林』이 1776 년부터 1828년까지 銘 답안을 실었다면, 『臨軒功令』은 1785년부터 1875년까지 명 답안을 실었고 1776~1784년, 1800~1816년의 공백이 있다. 두 문헌을 아울러 살펴본 다면 조선 후기 과시 문체로서 명 창작의 실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시험 대비에 효율적인 구성과 편집을 한 조선 후기 과문 참고서의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儷林』은 시기별로 어떤 시제가 출제되었는지 볼 수 있도록 짝․홀수 면 맨 끝에 시험 정보와 성적, 급제자 정보를 적었다. 또한 답안이 한 면에 다 담기 어려운 분량이면 과감 히 명 부분을 생략하거나, 일부만 실었다. 이처럼 『儷林』은 엄정성면에서 다소 한계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 자체가 이 문헌의 제작 목적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儷林』에 대한 소개와 자료적 가치를 통해 순조 대명의 특징을 살펴본 결과, 순조 대명은 건물명 관련 이미지를 통해 왕의 은사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다. 다양한 장소와 건물을 명시제로 출제한 정조대와는 달리, 순조 대에는 왕이 주로 활동했던 창덕궁 과 창경궁 안 건물명으로 시제가 한정되어 있었다. 이는 곧 왕권의 강화와 수험생에게 내리는 은사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추측된다. 또한, 1811년 10~12월에는 특이하게도 의장기와 관련된 시제가 중복 출제되는데, 당대 흉년과 재변으로 인해 불안정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조정의 노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고려대 도서관 소장 銘 선집 개관
3. 『儷林』의 자료적 가치와 그 의미
4. 『儷林』을 통해 본 순조 대 科試 문체 銘의 특징
5. 나오는 말
참고문헌
부록
Abstract

저자정보

  • 이미진 Lee, Mijin.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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