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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암 종헌의 근대 불교교육과 그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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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Buddhist Education and Its Significance by Master Manam Jongheon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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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is a study reexamining the educational activities of Buddhist Master Manam Jongheon. Gwangseong Uisuk, a modern school, was built to educate Baekyangsa Temple and nearby residents. Master Manam not only established and operated Yaksu Elementary School in Baekyangsa Temple, but also established and operated Gwangseong Uisuk. According to recently discovered data, Gwangseong Uisuk was established before 1910 and operated until around 1913, but it seems to have been forcibly closed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n this way, not only Gwangseong Uisuk but also classes were held, and labor nights were held to fight civilization and improve life. The young monks of Baekyangsa Temple not only went to the Central Buddhist School Forest and joined the Buddhist Youth Association, but also studied in Beijing and Japan and organized the Cheolwoo Association after returning home. Master Manam led modern Buddhist education, including the principal of the Modern Buddhist School, which is currently Dongguk University, while serving as the head of the academic affairs department, the director of the school affairs department, and the head of the school. As such, Master Manam tried to promote modern Buddhist schools as the head of the Buddhist education department and established a higher professional education institution. Master Manam formed the Honam Buddhist General Forest from around 1937 against the Japanese invasion and promoted Honam Buddhism by participating in the actual Buddhist purification movement after liberation. It followed the tradition of association of Daejanggyeongbeop of Baekyangsa Temple in Yeomalseoncho. In 1945 and 1946, Jeongtojinjong Dongbonwonsa Temple and Jeonggwangsa Temple in Mokpo had a Korean language lecture, which soon led to the operation of Jeonggwang School. Korea's representative Buddhist court, such as Gowoon, a literary figure, Park Wan-il, a Buddhist Jisun, and Misan, a Buddhist monk, and Park Wan-il, fostered outstanding beings not only in Honam Buddhism but also in modern Korean Buddhism.

한국어

본고는 만암 종헌의 교육활동에 대하여 재검토한 연구이다. 근대적 학 교인 광성의숙을 건립하여 석전과 환응 그리고 만암이 학감을 맡아 백양 사와 인근 주민을 교육시켰다. 만암은 백양사에 약수심상학교(약수초)의 설립 및 운영을 하였을 뿐 아니라 광성의숙을 설립 및 운영하였다. 최근에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광성의숙은 1910년 전에 설립되어 1913년 무렵까지 운영하였으나 일제에 강제 폐교된 듯하다. 강사로는 이종근, 신현국, 김종 래, 오시마야스다로, 곡소윤 등이다. 만암은 광성의숙뿐만 아니라 강습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노동야학을 열어 문명 퇴치나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하 였다. 광성의숙 졸업생인 박장조와 김봉수 등 백양사 출신 승려들은 중앙 불교학림에 진학하고 불교청년회에 가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북경과 일본으로 유학하고 귀국후 철우회를 조직하기도 하게 하였다. 만암은 조선불교 중앙 종무원 학무부장과 교무원 이사 및 교학부장을 지내면서 현재 동국대학교 교장 등에 재임하면서 근대불교교육을 주도하 였다. 즉, 1927년부터 1935년까지 불교전문학교의 개교를 준비하여 불교전 수학교와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과 이사장, 교우회 회장 및 도서관 고문에 재임하였다. 이처럼 만암은 종단의 교육부서의 장으로서 근대 불교전문학 교의 승격을 위해 노력하여 고등전문 교육기관의 설립이 이루어지게 하였 을 뿐만 아니라 불전 교우회를 재건하였다. 만암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1937년 무렵부터 호남불교총림을 결성 하고 해방후 실제적인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하면서 호남불교를 중흥시켰다. 여말선초 백양사의 전장법회의 결사 전통을 따른 것이었다. 1945⋅46년 목포의 정토진종 동본원사와 정광사에서 한글강습회를 하게 하였으며, 곧 정광학교의 운영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대표하는 승려 법정과 문학인 고 운, 신도 박완일과 같은 현대불교에 걸출한 인물을 양성하게 하였다.

목차

한글요약
Ⅰ. 들어가는 말
Ⅱ. 장성 백양사의 학교 설립과 국내외 교육 활동
1. 장성 백양사의 주석과 광성의숙 및 심상학교
2. 장성 백양사와 국내외의 교육기관 진출
Ⅲ. 근대 불교전문학교와 호남 불교교육
1. 중앙 불교계와 경성 불교전문학교
2. 호남 고불총림 설립과 한글강습, 정광중고
Ⅳ.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황인규 Hwang, In-gyu. 동국대학교(서울캠퍼스) 역사교육과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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