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Takeshi Umehara’s anti-war pacifism ─ Focusing on the cultural background of “Heisei” ─
초록
영어
Takeshi Umehara developed his own theory of Japanese culture, starting with Western philosophy, and in his later years came to present a new concept called “human philosophy.” Umehara, who expressed a sense of crisis in the Heisei era when the Cold War era ended and economic growth and low birth rates accelerated, tried to promote moral education through religious education based on Buddhist ideas.He strongly criticized the government’s policy and insisted on restoration of morality through religious thought, as Japanese politics gradually shifted to the right in the 45th anniversary of the end of World War II, including Yasukuni shrine visits and revisions to the Basic Law on Education. Umehara’s research mainly criticized modern Western philosophy and claimed that the Buddhist idea of “immortal life” should be inherited by mankind through war experiences inspired by the influx of ideas from Western imperialism.He argued that Western “monotheistic” ideas and “human-centered” thoughts are ideas that mankind should overcome, and developed the logic of “human philosophy” based on the Buddhist idea that “everything has Buddha nature, so everyone should become Buddha.” As a religious study, Umehara’s logic did not value the existing literature and had biased features and contradictions. Nevertheless, his work influenced Japanese civil society. From his last move to protect Article 9 of the Constitution, which clearly states that he renounces war, he can see the intellectual figure as a “thinker of civil society” who tried to match his thoughts and actions.
한국어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 1925~2019)는 독창적인 일본문화론을 전개한 사상가이다. 그는 1989년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경제의 저성장, 저출생 경향이 가속화된 ‘헤이세이(平成)’ 라는 시대 속에서 불교 사상을 중심으로 한 종교 교육을 통해 일본인의 도덕심 회복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특히 당시 우경화가 가속화되어 가는 정치 양상이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와 교육기본법 개정 등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한 것과 관련하여 그는 정부의 방침을 강하게 비판하며 전후 일본에서 상실된 도덕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불살생(不殺生)’의 불교 사상을 인류가 계승해야 할 영역으로 주장한 이유에는그가 체험한 태평양전쟁과 서구의 ‘일신교’ 사상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존재했고,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에 불성이 있기에 모두가 성불해야 한다(草木国土悉皆成仏)’라는 이념을 강조한 것이었다. 우메하라의 연구가 기존 문헌을 중시하지 않는 편향성과 모순이 존재한 것은 ‘전후 사상’에 기인한 반전평화주의라는 강한 ‘내적필연성’이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만년의 시기에 ‘헌법 9조’를 옹호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해 나간 우메하라 다케시는 ‘시민사회의 사상가’로서 마지막 전중파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일본어
梅原猛は西洋哲学を始め、独自の日本文化論を発展させ、晩年に「人類哲学」という新しい概念を提示するに至った。冷戦時代が終わり、経済の低成長、低出生傾向が加速した「平成」という時代の中で危機感を表明した梅原は、仏教思想に基づいた宗教教育を通じ道徳教育を試みようとした。戦後45年にあたる「平成」に入り、次第に日本の政治が右傾化していく様相は靖国神社参拝問題や教育基本法改正など、社会問題として現れ始めたことについて、彼は政府の方針を強く批判し、宗教思想による道徳心の回復を主張した。梅原の研究が主に近代西洋哲学を批判し「不殺生」の仏教思想を人類が継承すべき領域と主張したのは、西欧の帝国主義思想の流入に触発された戦争体験によるものだった。西欧の「一神教」思想と「人間中心主義」的な思考が人類が克服すべき思想だと認識し「すべてのことに仏性があるから皆が成仏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仏教思想を土台にした「人類哲学」の論理を展開した。宗教研究としての梅原の論理が既存の文献を重視せず偏向的な特徴と矛盾が存在するという批判にもかかわらず、彼の著作物は日本の市民社会に影響を及ぼした。戦争放棄を明示した「憲法9条」を守護するための行動を展開していった彼の最後の歩みから思想と行動を一致させていこうとした「市民社会の思想家」として知識人の姿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
목차
Ⅰ. 머리말
Ⅱ. ‘헤이세이’기의 종교 담론과 우경화 양상
Ⅲ. 불교와 숲의 사상(森の思想)에서 ‘인류철학’으로의 전개
Ⅳ. 출구로서의 불교: 내셔널리즘에 대한 경계
Ⅴ. 맺음말
【参考文献】
<要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