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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商悳의 天津 駐在 시기 관직과 기록 고찰

원문정보

Kim Sang-deok's Time in Public Office and Records During His Tenure in Tianjin

김상덕의 천진 주재 시기 관직과 기록 고찰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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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 by which Kim Sang-deok assumed the positionof government official stationed in Tianjin(天津駐在從事官) and analyzes the recordshe left pertaining to his official duties. Kim Sang-deok commenced his role as anofficial in Tianjin in 1889. When his superior, Kim Myeong-gyu—the residentcommissioner in Tianjin(駐津督理)—returned to Korea in early 1890, KimSang-deok assumed the role of acting resident commissioner. Personnel changescontinued in Joseon regardless of the situation in Tianjin, and Kim Sang-deokreturned to Korea in 1891 due to illness. During his tenure in Tianjin, Kim Sang-deok gained a thorough understanding ofthe Qing and Tianjin through several books. The Daecheongjinsinjeonseo(大淸搢紳全書) provided insights into the Qing government’s structure and officials that heused to update his own knowledge. His records also contained details about otherforeign diplomatic missions stationed in China. The Jinmunjapgi(津門雜記) became asource of knowledge regarding various aspects of Tianjin’s culture, and hedocumented the information about key facilities and the transportation networksconsisting of waterways and land routes within and around Tianjin in mapsincluded in the book. The documents Kim Sang-deok authored often painted a picture of Joseon’sdiplomatic reality at that time. Gosanggwanswaecheom(沽上館瑣簽) predominantlycontained records of internal Qing affairs or the relationship between Qing andJoseon, including the format of the invisible mark(Bingpyo, 憑票), the transitcertificate issued in the name of the resident commissioner in Tianjin. Jacho(咨草)was a copy of the Jamun(咨文) sent by the King of Joseon to Qing. Given thatcommunic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passed through the Joseon diplomaticmission in Tianjin, Kim Sang-deok not only replicated the content but also reproduced the placement of the engraving of king’s signature(Eoap, 御押) and thegreat seal(Eobo, 御寶) to resemble the original. In the 1891 diplomatic documentconcerning the Qing’s request for the opening of the port of Cheoldo Island(鐵島),one can discern the situation faced by Joseon, which had to constantly respond toforeign demands to open its ports even after the opening of Dongrae Busan,Deokwon Wonsan, and Incheon Jemulpo.

한국어

본고에서는 김상덕이 天津駐在從事官으로 부임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고 그가 업무와관련하여 남긴 기록을 분석했다. 김상덕은 1889년 중국 천진에 파견되어 종사관으로서의업무를 시작했으며, 상관이었던 駐津督理 김명규가 1890년 초 중도 귀국하게 되자 署理로서 그를 대신하게 되었다. 천진의 상황과는 별개로 조선에서의 본직은 인사이동이 계속 진행되었는데, 병으로 인해 1891년에 김상덕 역시 귀국하게 되었다. 천진에 주재하던 시기 김상덕은 각종 서책을 바탕으로 청과 천진에 대해 상세히 파악했다. 『大淸搢紳全書』에서는 청 정부 조직과 관원들의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현행화했다. 자신과 같이 외국에 파견된 해외 주재 중국 영사에 대해 기록한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津門雜記』를 바탕으로 천진의 다양한 문물을 익혔으며, 책에 수록된 지도에 천진성내외의 주요 시설, 수로‧육로를 이용한 교통편에 대한 정보를 남겼다. 김상덕이 별도로 작성하여 남긴 문서는 당시 조선의 외교 현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沽上館瑣簽」은 대부분 청 내부의 정보나 청과 조선과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었으며,주진독리의 명의로 발급한 통행 증명서인 ‘憑票’의 양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咨草」는 조선 국왕이 청에 보낸 咨文을 베낀 것으로, 양국을 오가는 자문이 천진의 조선공관을 경유했기 때문에 내용은 물론 실제 문서와 유사하게 御押, 御寶를 배치할 수 있었다. 1891년청 정부의 鐵島 개항 요청과 관련한 자문에서는 동래 부산, 덕원 원산, 인천 제물포 이후로도 끊임없이 외국의 개항 요구에 대응해야 했던 조선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駐津從事官 김상덕과 署理駐津督理
Ⅲ. 김상덕이 남긴 청, 천진 관련 기록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이은진 Lee, Eun-jin.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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