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Official Duty System and Scope of Cheongpung(淸風)·Soksuseungpyeonggye(續修昇平稧)
초록
영어
Cheongpungseungpyeonggye that appeared in the form on Hyangyakgye(鄕約契) at Cheongpung-gun(淸風郡) in 1893 was the first Korean traditional music orchestra. After closed temporarily, the gye(稧) was established again in the name of Soksuseungpyeonggye in 1918 and continued music activity and was dissolved due to the Korean War. Fortunately, there exist a record in the 『Jecheongunji(堤川郡誌): Local newspaper of Jecheon-gun』 and provides a clue for finding out the substance. Thus, this paper analyzed official duty system of Cheongpung·Soksuseungpyeonggye that is amounting to 23 kinds, and comprehended semantic network hidden underlying in the system. This paper also verified the scope of expanded Cheongpung·Soksuseungpyeonggye by mentioning existence of aggong(樂工)·agsaeng(樂生) bono(保奴), oebang(外方) yeogi(女妓) belonging to Jangagwon(掌樂院) that formed solidarity with Seungpyeonggye. Results show that official duty system of Cheongpung·Soksuseungpyeonggye has context conforming to the signifiant(記表) of semiotics, confirming that it is accompanied by a series of semantic network that corresponds to the signifie(記意). Therefore, organization of official duty taken by the Seungpyeonggye confirms that Hyangyakgye(鄕約契) was an organization that pursued an orchestra in substance beyong its appearance. It also provides supporting evidence of circumstances that official duty system of Seungpyeonggye also performed comprehensive music activities covering pansori·folk song and even court music as well as succession and maintenance of ‘Classical music 506 yul(律)· music 53 movements(章)’ that were already known. And solidarity with aggong, agsaeng, bono and hyanggi(鄕妓) represents the characteristics of private·public collaborative performance of Seungpyeonggye. Meanwhile, it is assumed that official duties such as 2 persons of jangjae(掌財), seogi(書記), yeonsu(宴需) and yeonju(宴酬) that were newly established by Soksuseungpyeonggye suggest there performances and events were held much more actively than before 1918, indicating that the gye secured a considerable financial foundation.
한국어
1893년에 호서권의 내륙 산간 지역인 청풍군에서 향약계 형식을 취하고 출현한 청풍승평계는 민간 주도하에 자율적으로 결성된 최초의 국악 악단이다. 청풍승평계는 일시 폐해진 이후인 1918년에 다시 속수승평계라는 이름으로 재조직된 끝에, 왕성한 음악 활동을 전개하다가 1950년의 6·25 사변으로 인하여 해체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다행히 이상필이 집필한 『제천군지』에 청풍·속수승평계와 관련된 귀중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어, 실체 규명을 위한 고증 작업과 학술 활동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련의 노력이 사료적 가치를 담지한 『제천군지』의 해당 내용을 상회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한 실정이다. 이에 이번 논의의 장을 통해서는 약 23종에 이르는 청풍·속수승평계의 직임 체계를 분석함과 더불어, 또한 그 이면에 내재된 다양한 의미망을 해독하는 작업을 펼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승평계와 연대 혹은 협연을 연출한 장악원 소속의 악공·악생 보노와 외방 여기의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청풍·속수승평계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논의를 개진하기도 했다. 그 결과 청풍·속수승평계의 직임 체계는 기호학의 기표(記表)에 준하는 맥락이 있으며, 이는 기의(記意)에 상응하는 일련의 의미망을 대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승평계가 취한 직임 구성이란, 이 조직이 취한 향약계라는 외피의 너머에서 실제로는 악단을 추구한 단체였음을 분명하게 방증해 주고 있다. 또한 승평계의 직임 체계는 기존에 알려진 ‘고전음악 506율(律)·음악 53장(章)’을 계승·유지하는 문제 외에도, 이 단체가 판소리·시조창·가곡창 및 궁중 음악과 군악까지를 망라한 종합적인 음악 활동을 전개했던 정황을 확인시켜 주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장악원 소속의 악공·악생 보노 및 향기와 연대를 취했던 장면은 승평계의 민·관 협연적인 특징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속수승평계에서 신설한 장재 2인과 서기 및 연수(宴需)·연수(宴酬) 등과 같은 직임들은, 1918년도 이전보다 훨씬 왕성한 공연·행사가 진행되었을 개연성을 시사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체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정적 기반을 구축했을 것임을 짐작케도 해준다. 이상과 같은 제반 특징적인 정황들로 인하여 역사 속으로 화해간 승평계의 복원과 함께, 전시관 건립을 희망하는 등의 성급한 전망이 대두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I. 머리말
II. 청품승평계의 직임 구성
III. 속수승평계의 직임 쇄신
IV. 장악원(掌樂院)과의 연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