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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논문 1 : 내포 동학농민혁명 선양계승대회-춘암 박인호의 민족운동

춘암 박인호의 동학 수행과 동학농민혁명 활동

원문정보

Chunam Park In-ho’s Donghak Practice and Donghak Peasant Revolution Activities

성강현

동학학회 동학학보 제68호 2023.12 pp.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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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Chunam Park In-ho was born in 1855 in Deoksan, Chungcheong Province, as a poor peasant of middle status. In the Naepo area where he lived, most of the land was owned by the Yangban landlords in Seoul, so the life of the peasants was difficult, and Park In-ho could not escape it. Park In-ho, who had entered adolescence, was lost in the difficult world of the transition at the time, and entered Donghak in 1883. He agreed with Donghak’s philosophy of pursuing equality and creating a new world. Under the direct guidance of Choi Si-hyung, Park In-ho, who grew up to be a leader of Donghak in the Naepo region, participated in the Gyojosineon Movement(A Movement to Pardon the Founder’s Wrongful Death) in February 1893 as an appealer, and played a key role in the Boeun Gyojosineon Movement(A Movement to Pardon the Founder’s Wrongful Death) in March as a Dukeuidaejoebjoo. Whe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broke out in 1894, he led the Donghak Army in the Naepo area of Chungcheong Province to defeat the Japanese army at the Battle of Sungjeongok Valley after the September gun fire and won the victory of the Government Forces at the Battle of Sinryewon. However, after being defeated in the Battle of Hongju Castle, he fled and struggled to survive. The Donghak Army of Naepo ended with the defeat of the Battle of Haemi Castle by the Kwan’s army. Chunam Park In-ho was a representative Donghak leader in the Naepo region, and later served as the supreme leader of the Cheondo Church as the 4th Daedoju of Cheondogyo.

한국어

춘암 박인호는 1855년 충청도 덕산에서 중인 집안의 빈한한 소작농으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내포 지역은 이른바 경화사족들이 토지를 장악해 경제적 이득을 수탈하고 있어 지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박인호도 이러한 지역적 한계에서 오는 곤궁함을 벗어날 수 없어 의서나 지가서 등을 익혔다. 청년기에 접어든 박인호는 당시 변환기의 어려운 세상에서 살아갈 방책을 찾다 헤매다가 1883년 동학에 입도했다. 그는 동학에저 주장하는 시천주의 평등 추구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혁세사상에 동의했다. 최시형의 직접 지도를 받으며 내포 지역의 동학지도자로 성장한 박인호는 1893년 2월의 광화문 교조신원운동에에 상소인으로 참여했고, 3월의 보은 교조신원운동에서 덕의대접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자 충청도 내포 지역의 동학군을 이끌고 9월의 총기포 이후 승전곡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신례원 전투에서 관군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후 피신하여 어렵게 살아나게 된다. 내포의 동학군은 관군에 의해 해미성 전투 등지에서 패전하여 막을 내렸다. 춘암 박인호는 내포 지역의 대표적 동학지도자로 이후 천도교의 제4세대도주로 천도교단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동학 입도와 내포 지역 포덕
3. 덕의대접주로 교조신원운동 주도
4. 내포의 승전곡전투를 지휘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성강현 Kanghyun Sung. 동의대학교 역사인문교양학부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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