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Study of the Influence of Foreign Horror Films Appearing in Korean Grotesque Film in the 1960s - Focusing on the Works of Director Lee Yong-Min
초록
영어
Director Lee Yong-Min made a number of bold cinematic attempts while producing a number of grotesque films in the 1960s and 1970s, before the development of genre films in Korea. Lee Yong-Min graduated from the film department at a Japanese university and worked as a cinematographer during the Imperial Japan’s colonial period, and he came to Korea after liberation and worked with the U.S. military, finding himself in an environment where he could read global film trends. He took advantage of this and added comedy or satirical elements to scenes or content that could be problematic for censorship, thereby avoiding censorship through such comical scenes. In one case, the first half of the film was a horror film with a rancorous ghost, and the second half was a crime mystery story, responding to the censorship of the authoritarian regime that emphasized the destruction of superstitions. In terms of film content, Lee Yong-Min borrowed the science fiction setting that was popular at the time, actively utilizing analog visual effect technologies such as super imposition to provide the attractions that audiences expect from genre films. To create these cinematic narratives and images, Lee as a director appears to have referenced many foreign films of the time, not as a simple imitation but as a method of pastiche that twists the original's setting to emphasize dissonance, mixing various materials in his own way to create a Korean atmosphere. Therefore, even from today's perspective, Lee Yong-Min's work has built its own unique cinematic aura that is difficult to label unconditionally as plagiarism. Even at the time when he worked actively as a grotesque film director in the 1960s, although his films did not fall into the ranks of mainstream films, his grotesque films were genre experimental films that were allowed to a limited extent until the emergence of a stronger political oppression system called Yushin (the ‘Revitalizing Reforms’) in 1972.
한국어
이용민 감독은 한국에서 장르영화가 발달하기 전인 1960~1970년대 다수의 괴기영화를 제작하면서 과감한 영화적 시도를 하 였다. 검열의 규제가 강했던 당시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용민은 일제강점기에 일본대학 영화과를 졸업하고 일본 영화계에서 촬영감독으로 활동했으며, 해방 후에는 한국으로 건너와 미군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세계적인 영화 트렌드를 읽 어낼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었다. 이용민은 이러한 장점을 활용하여 검열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장면이나 내용들에 코미디나 풍자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코믹씬으로 검열의 예봉(銳鋒)을 피해갔다. 또한 영화 전반부는 원귀가 나오는 공포영화, 후반은 범죄추리물의 서사를 접목하여 미신타파를 강조하던 권위주의 정권의 검열에 대응하였다. 내용적으로 보면 이용민은 당대 유 행하던 공상과학적 설정을 차용하고, 이중인화 등의 아날로그 시각효과 기술 등을 적극 활용하여 관객이 장르영화에 기대하 는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영화적 서사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용민 감독은 당대의 많은 외국영화들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단순 모방이 아니라 원작의 설정을 비틀어 불협화음을 강조하고, 다양한 소재를 뒤섞어 한국적인 분위기 속 에 녹여내는 혼성모방의 방식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용민의 작품은 현재의 시각으로 보아도 무조건 표절로 단정하기 어려 운 자신만의 묘한 영화적 아우라를 구축하고 있다. 비록 1960년대 이용민이 괴기영화 감독으로서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였 을 때도 그의 영화는 주류영화의 반열에 들지는 못하였지만, 이용민의 괴기영화는 1972년 유신이라는 더욱 강고한 정치적 억 압체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제한적이나마 허용되었던 장르적 실험의 영화였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검열이 정해준 장르 구분과 이용민의 괴기영화
2.1. 공상과학적 설정의 차용과 범죄추리물의 서사 방식
2.2. 풍자와 코믹요소의 반영
3. 이용민의 괴기영화에 반영된 외국 공포영화의 영향력
3.1. 1950-1960년대 한국에서 상영된 외국공포영화들
3.2. 미치광이 과학자의 등장
3.3. 외국 공포영화의 영향력과 혼성모방의 흔적들
3.4. 혼성모방과 표절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영화들
4. 결론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