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Catholic Church was destroyed and greatly damaged during the three-year Korean War. Because foreign missionaries did not take refuge to protect their parishes and parishioners, they were captured or killed by the North Korean army. Because of this, the Catholic Church became increasingly anti-communist during the Korean War and even recognized the Korean War as a holy war or crusade. However, existing studies that analyz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old War and religion from a macro perspective are limited by their inability to capture the "voices" of the specific people who made up the Christian church and encountered communism. The writings of the missionaries who suffered, however, make it difficult to simplify the Korean War as a holy war against the devil. The Missionary Society of St. Columban kept records of investigative reports on missionaries who were abducted or killed during the war, efforts to negotiate an armistice and release prisoners of war, and reports on the status of wartime missions. Until now, studies on the activities and documents of missionaries during the Korean War have been organized by religious orders and foreign missions, including introductions to the activities and documents of Maryknoll, Benedictine, and Golumban missions, but few have comprehensively summarized them. This article examined missionaries' memoirs written after their release from the camps following their death marches and Columban documents that show missionary activities in the midst of war to understand how missionaries fulfilled their mission in attitudes and practices that intensified hatred, hostility, and ideological opposition. In doing so, it explored the attitudes and practices of missionaries in the face of intensifying hatred, hostility, and ideological opposition, and the efforts they made to rebuild the church in the South Korea during the war. The diaries of the missionaries who survived the death march described martyrdom, but also showed Christian faith and reflection unrelated to anti-communist or Cold War ideology. The missionaries' testimonies of their kidnapping include a spirit of martyrdom and prayers for forgiveness and repentance. In a time of war, when hatred, hostility, and ideological confrontation were bound to intensify, the missionaries carried out their mission and faith without being bound by ideology. The martyrdom of the missionaries and the return of the abductees in 1953 were widely publicized not only in their respective religious orders but also in their home countries of the United States, France, Germany, the United Kingdom, Ireland, and Australia. Monastic orders and Catholics in their home countries actively supported the returning missionaries when they re-entered Korea after the armistice in July 1953 and organized missionary marches. The sufferings and martyrdom of the missionaries provided the basis and impetus for the active mission and relief work in and after wartime South Korea.
한국어
가톨릭 교회는 3년이나 진행된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본당과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가지 않 았기 때문에, 북한군에 의해 체포되거나 희생되었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 회는 한국전쟁 기간 반공주의가 강화되고 한국전쟁을 성전(聖戰)이나 십 자군 전쟁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냉전과 종교의 관계를 거시적 인 조망에서 분석하는 기존의 연구들은 그리스도교 교회를 구성하고 공산 주의를 만났던 구체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 닌다. 고난을 당한 선교사들이 체험하고 남긴 기록은, 한국전쟁을 악마와 대 결을 벌이는 성전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준다. 성골롬반외방 선교회는 전쟁 당시 납북되거나 사망한 선교사들에 대한 조사보고, 정전협상과 포로석방을 위한 노력, 전시 선교 현황보고 등의 기록을 남겼다. 지금까지 한국전쟁기 선교사들의 활동과 문서 관련 연구는, 메리놀선교회, 베네딕도회, 골롬반회의 활동과 자료소개 등 각 수도회와 외방선교회 별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포괄적으로 정리한 글은 거의 없다. 이 글은 각 수도회 선교사들이 죽음의 행진을 겪고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남긴 수기와 골롬반 문서를 추가하여, 남북한 각 수도회 선교사들의 수용소 생활, 정전 협상과 석방 과정, 남한에서 교회 재건을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보았다. 이를 통해 선교사들이 증오와 적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와 실천으로 선교 사명을 이루어 나갔는지, 전쟁 기간 선교사들이 남한 교회 재건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죽음의 행진을 겪고 생환한 선교사들의 수기에는 순교를 서술하면서도 반공이나 냉전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성찰을 보여주었다. 선교사들의 납북 체험기와 증언에는 순교 정신과 용서와 회개를 위한 기도가 들어있다. 증오와 적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전쟁상황에서 선교사들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선교와 신앙의 실천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선교사들의 순교와 1953-54년 수용소에서 선교사들이 석방되어 생환한 소식은 각 수도회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고국인 미국·프랑스·독일·벨기에·영국·아일랜드·호주 등지에서도 대서 특필되었다. 납북 선교사들이 남긴 생생한 수기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출판되어 번역되고 주목을 받았다. 본국의 수도회와 가톨릭 신자들은 생환된 선교사들이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후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여 선교의 행진을 벌일 때, 이들을 적극 후원하였다. 선교사들의 수난과 순교는 전시 남한에서의 선교와 구제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기반이자 추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 외국인 선교사들의 수난과 기록
Ⅱ. 선교사들의 순교와 ‘죽음의 행진’
Ⅲ. 수용소 생활과 정전협상의 포로문제, 석방 과정
Ⅳ. 귀국과 귀환, 선교사들의 한국교회 공동체 재건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 한국전쟁
- 죽음의 행진
- 순교
- 선교
-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 메리놀 외방전교회
- 파리 외방전교회
- 가르멜수녀회
- 샬르트 성바오로 수녀회
- 베네딕도회
- 패트릭 번 주교
- 토마스 퀸란 몬시뇰
- The Korean War
- Death March
- Martyrdom
- Missionary work
- St. Columban Foreign Missionary Society
- Maryknoll Foreign Missionary Society
- Paris Missionary Society
- Carmelite Sisters
- Sisters of St. Paul of Chartres
- Order of Saint Benedict
- Bishop Patrick Byrne
- Monsignor Thomas Quin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