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privileges granted by Břevnov abbots are supposed to be important sources for assessing the deliberate immigration policies of the host country, Broumov. The privileges, which guaranteed various autonomous rights and economic immunity, defined the rights and obligations between abbots and ‘German’ immigrants. The fact that immigrants were issued privileges suggests that the purpose of German immigration was to facilitate effective administration of the monastic territories. As revealed in the uprising of the year 1300, German immigrants forged a new collective identity over time. Legal aspects especially, such as written feudal contracts, property rights, and community autonomy, inspired them to develop topophilia, a strong sense of a particular place. Furthermore, a series of border villages grew up as a contact zone, which strengthened the Slav-German relationship in Bohemia. The historiography of medieval migration has long been dominated by national narratives. This paper offers a new approach to the migration problem between Sudetenland and Germany in the Middle Ages that goes beyond a traditional dichotomy between conquest and subjugation. The history of immigration into Eastern Europe no longer needs to find its motives in the national purposes of medieval Germany.
한국어
이 논문은 중세 보헤미아 왕국 북부의 독일인 이주사를 다룬 글이다. 특히, 13세기 후반 브레브노프 수도원장들이 하사한 특허장을 중심으로 이주 초청자 와 이주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살펴보았다. 기존의 동방 이주 연구는 동유럽의 독일화 혹은 식민 운동 관점에서 수행되거나 이주를 제국주의적 침탈로 이해하 면서 가해와 피해, 우월과 열등의 이항 대립적 구분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중세 주데텐란트 개간 사업은 국가 주도 하의 대규모 이주도 우월한 문화 전파의 결과도 아니었다. 수도원장은 체계적인 이주를 통해 안정적인 수입 원을 확대하였고 이주민들은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동유럽 이주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아니라 내적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브로우모프가 위치한 지형적 특성은 이곳의 촌락들이 보헤미아 왕국 내지와 는 다른 경로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이주민들은 황무지 경작 대가로 토지와 재 산의 소유와 상속·처분권을 보장 받았고, 영주에 대해서는 약속된 부역과 일정 량의 지조 납부 의무만 이행하면 되었다. 중세 보헤미아 왕국의 자유와 자치에 대한 인식은 주변부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1300년 봉기는 새로운 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공동체성을 형성했음을 보여준 다. 동시에 이주는 침략이 아니며 갈등은 정주 이후에 생겼음을 보여준다. 봉기 는 봉건적 지배 질서의 해체가 아니라 개인과 촌락 공동체의 자결권 회복을 목 적으로 했다. 평범한 농민과 수공업자들이 정착했던 접경지대 브로우모프는 근 대적인 민족 논리가 아니라 현실 상황에 맞춰서 살면서 실리를 추구했던 공간 이었다. 문화적 수렴 현상이 이주를 뒤따랐던 뒤엉킨 역사의 장소이기도 했다.
목차
Ⅱ. 이주 양상
Ⅲ. 이주의 원인과 목적
Ⅳ. 1300년 봉기와 공동체성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