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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la paix de Dieu à celle des Ducs en Normandie aux XIe et XIIe siè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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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세기 신의 평화에서 노르망디 공들의 평화로

Jeong-Mi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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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After the publication of book of Ernest Sémichon, what we called, La paix et la trêve de Dieu , the peace of God was drawn attention as the one among the important subjects about the social medieval history by medievalists. It is said that the peace of God was the great movement emerged in the end of the 10th century and it beared the feudal christianity composed in the medieval society. Above all, the medievalists had paid attention to the peace of God in the 11th century, especially, in the process of propagation as well as in the social transformation owing to its development. Besides, the peace of God entered upon a new phase in the 12th century. In other words, the seigneurs had exploited the normalization of churches in Flandre, Bourgogne and Anjou in leading the peace of God in the 11th and the 12th centuries. Most of all, there was the remarkable passage from the peace of God to the that of normandy dukes in this period. In 1042, the truce of God, the second stage of the peace of God, was announced in the council of Caen where the private combats were interdicted by the normandy churches from the night of Wednesday to the morning of Sunday, from Advent to Epiphany and from Ash Wednesday to Easter. In addition, the normandy bishops made the combatants suspend the military actions from rogation to Pentecost. In this article, we examine the normandy dukes as the legislators, the justiciars and the protectors of the public peace in tracing the passage from the peace of God to the that of normandy dukes in the 11th and the 12th centuries.

한국어

에르네스트 세미숑(Ernest Sémichon)의 『신의 평화와 휴전(La paix et la trê̂ve de Dieu )』이 출판된 이후, 신의 평화(the peace of God) 운동은 서양 중세사 연구의 새로운 주제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공권력의 부재와 성문법적 통치 질서의 약화라는 배경 속에서 989년 샤루(Charroux) 공의회를 시작으로 신의 평화운동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나갔다. 서양 중세 봉건 질서와 그리스 도교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신의 평화운동의 성격, 전개와 확산 등에 관한 연구 가 이어졌다. 11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신의 평화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일시적 인 전투 중지를 뜻하는 이른바 신의 휴전(the truce of God)운동으로 확장되었 다. 신의 평화 공의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신의 평화운동은 특히 11·12세기 플랑드르(Flandres), 부르고뉴(Bourgogne)와 앙주(Anjou)의 봉건 세속 영주들 에 의해서 주도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노르망디 공들이 적극적으로 주재하는 평화 공의회는 이러한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다. 1042년 캉(Caen) 공의회에서 신의 평화운동의 더 한 단계 나아간 신의 휴전 운동이 선포되었다. 즉 노르망디 교회들은 수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대 림절(待臨節, Advent)부터 주공현축일(主公現祝日, Epiphany)까지, 그리고 재 (ash)의 수요일부터 부활절(復活節, Easter)까지 전투원들의 사적인 전투를 금 지했다. 게다가 노르망디 주교들은 전투원들에게 삼천(三天, rogation)기도에서 성령강림축일(聖靈降臨祝日, Pentecost)까지 군사 행동을 중단하도록 했다. 이 논문에서 11·12세기 신의 평화에서 노르망디 공들의 평화로의 이행에 주목함과 동시에, 입법자이자 사법 통치자임과 동시에 노르망디 평화 수호자의 역할을 수 행하는 노르망디 공들의 정치적 행보를 추적하고자 한다.

목차

Ⅰ. Introduction
Ⅱ. De la paix de Dieu à la trêve de Dieu en Normandie
Ⅲ. La trêve de Dieu et le duc-roi, Guillaume le Conquérant
Ⅳ. La paix de Dieu à celle des ducs normands
Ⅴ. Conclusion

<국문초록>

저자정보

  • Jeong-Min LEE 이정민. Associate Professor,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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