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factors that led to the choice and activation of metal type printing technolog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o do so, I analyzed articles from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metal type print books in the early Joseon period. Although it was China that first started letterpress printing, it is undeniable that Joseon revitalized metal type printing. In Korea, letterpress printing generally seems to have been around since the beginning of the 13th century, and there are several records of letterpress printing in Goryeo, both in the center and in the provinces. However, there is no record of why they chose letterpress printing. Even in Joseon, which is considered to have been the most active in metal type printing, there is no record of why they chose metal type printing. As a result, later studies have tried to understand the reasons for Joseon’s choice of metal type by relating it to the conditions they faced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such as the fact that metal type was a more suitable method for printing small quantities of various items compared to woodblocks, or that printing with metal type allowed them to print books quickly. Records of metal type printing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of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surviving metal type print books show that metal type printing was more active than ever. This provides evidence of how the rulers of the time perceived metal type printing as a technology. Therefore, I analyzed the records of metal type printing and the surviving metal type print books to show how active it was. Through this, I examined the technological perceptions and characteristics of Joseon’s view of metal type printing technology. Joseon rulers recognized that metal type was a technology that could print anything they wanted to print. In the process of choosing metal type printing technology, factors such as the volume and nature of the book were not the main influencing factors, and it was recognized that it was possible to print large quantities like woodblock printing. And even documents intended to admonish the people can be found printed with metal type. In conclusion, at least in the early Joseon Dynasty, metal type was a technology that could be used to print whatever was needed.
한국어
이 연구는 조선이 건국 초기에 금속활자 인쇄기술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활성화된 사항을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와 조선 초기에 인출된 금속활자 인쇄본들의 분석을 통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활자 인쇄의 개념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중국이었지만, 활자 인쇄를 활성화시켰던 것은 조선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활자 인쇄는 대체로 약 13세기 초부터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에서는 중앙과 지방에서 활자 인쇄를 실행한 여러 기록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왜 활자 인쇄를 선택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특히 금속활자 인쇄가 가장 활성화되었다고 평가받는 조선 역시 활자 인쇄를 왜 선택하였는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 보니, 후대의 연구에서는 조선이 금속활자 인쇄를 선택한 계기에 대해 활자는 목판에 비해 다품종 소량 인쇄에 적합한 방법이라고 여겼다던가, 활자로 인쇄하면 신속하게 서적을 인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등으로 보면서 조선 건국 초기에 직면했던 시대적 상황과 연관지어 조선의 금속활자 선택을 이해해온 면이 없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드러나고 있는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 인쇄 기사들과 현재 전하고 있는 조선 초 금속활자 인쇄본들은 당시 금속활자 인쇄가 그 어느 시기보다 활성화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금속활자 인쇄 기록과 현전본들은 당시의 위정자들이 금속활자 인쇄를 어떠한 기술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근거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속활자 인쇄 관련 기록들과 현재 전하는 금속활자 인쇄본을 분석하여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이로써 조선이 금속활자 인쇄기술을 바라보는 기술 인식과 그 특징들을 살피고자 하였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조선의 위정자들은 금속활자는 인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찍어낼 수 있는 기술이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금속활자 인쇄 기술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서적의 분량이나 성격과 같은 요소들은 주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지 않았고, 목판인쇄처럼 다량 인쇄도 가능하다고 인식하였다. 위정자들만을 위한 서적뿐 아니라 관청에서 필요한 실무서들을 관원들의 요청에 의해 인쇄하여 반사되었으며, 백성들을 훈계할 목적의 문서들마저도 금속활자로 인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적어도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는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찍어낼 수 있는 기술이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