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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1930년대 부산 영도의 물(水) 이용에 관한 연구 : 산업・일상생활・소방(消防) 분야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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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Water Utilization in Yeongdo Busan, 1910s-1930s : Focusing on Industry, Daily Life, and firefighting

한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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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analyzes water use in Yeongdo Busan between the 1910s and 1930s, focusing on the areas of 'industry', 'daily life', and 'firefighting'. Busan was first supplied with tap water in 1910. Tap water was supplied through undersea water pipes in Busan and Yeongdo. Tap water supply was unstable due to problems with undersea water pipes and drought. Therefore, singular and part-time water supply frequently occurred. The unstable water supply has damaged the industry and people in Yeongdo. A factory in the area had no access to tap water, so they dug a well. Local residents were unable to receive water from high-lying areas due to the weak water pressure of the undersea water pipe. If tap water did not come out, it had to be washed using seawater. In addition, local residents who could not use water supply facilities used wells in the village, but in severe drought, even the wells dried up and threatened their survival. One day, a Joseon boy in Yeongdo lost his life by acting superstitious in hopes that the dried well would be filled with water again. Yeongdo's water supply environment was difficult to properly respond to frequent fires. A fire hydrant is a means of extinguishing a fire quickly and easily connected to a water supply facility. However, only three fire hydrants were installed in Yeongdo until the mid-1920s, and virtually all of them were unusable. Efforts have been made to secure facilities by collecting donations from companies in Yeongdo and purchasing pumps for fire trucks, but it has not been a fundamental solution to the problem. The problems that the Yeongdo community had to face over the use of water from 1910 to 1930 were caused by a combination of discriminatory and violent times called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usan's water supply policy, and climate problems such as frequent droughts.

한국어

본 연구에서는 1910년대-1930년대 영도지역사회의 물의 이용에 관해 ‘산업’, ‘일상생 활’, ‘소방’ 분야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10년 부산 남빈정(南濱町)과 영도 사이 바다 아래에 매설된 해저송수관을 통해 처음으로 영도지역에 수돗물이 공급되었다. 영도의 수돗물 공급은 해저송수관의 문제(고장과 파손), 가뭄 등에 의한 상수도 수원지 고갈로 인해 안정적이지 못했고, 그로 인해 지역의 산업은 물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영도를 대표하는 공장이었던 일본경질도기회사에서는 상품 생산에 필요한 수돗물을 쓸 수 없게 되자 우물을 팠다. 지역민은 상수도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 우물을 이용했는데, 극심한 가뭄에는 우물까지 말라버려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때 영도의 한 조선 소년이 말라버린 우물에 물이 다시 차오르길 기원하며, 미신에 근거한 기우제를 실행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영도의 상수도 시설은 화재에도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소화전은 상수도 시설과 연결되어 빠르고 쉽게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영도에는 1920년대 중반까지도 3개의 소화전만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것들 모두 사실상 무용지 물 상태였다. 영도의 공장들로부터 기부금을 모아 소방 자동차용 펌프를 구입하는 등 시 설을 확보‧보완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1910년대-1930년대 영도 지역사회가 물의 이용을 둘러싸고 겪어야 했던 문제들은 일제강점기라는 폭력적인 시대상황, 부산부의 차별적인 상수도 정책, 잦은 가뭄과 같은 기 후문제, 영도의 지리적 특성 등이 중첩되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성과 는 영도의 근현대 일상생활에 관한 연구의 토대가 되면서, 당해시기 부산의 전체상을 보 다 선명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들어가기
Ⅱ. 선행연구분석 및 연구방법
Ⅲ. 영도의 상수도 시설
Ⅳ. 물의 이용양상
Ⅴ. 나가기
<참고문헌>

저자정보

  • 한현석 Han Hyeonseok. 한국해양대학교 글로벌해양인문학부 시간강사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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