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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농악의 정체성 변화양상과 여성농악단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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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es in the Identity of Jeonju Nongak and the Role of Women’s Nongak Band (Yeoseong-nongakdan)

김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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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examines the changes in Nongak that have been performed in Jeonju. Since modern times, Jeonju Nongak has undergone several major changes. Depending on the aspect, it is remarkable enough to bring about a change in identity. The data that can confirm the reality of Jeonju Nongak after the modern era is the “Honam Nongak,” an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survey report conducted by Hong Hyun-sik, Kim Cheon-heung, and Park Heon-bong in 1967 and published by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This report can be said to be the first report related to the nature of Jeonju Nongak. The core of this report lies in the fact that Jeonju Nongak was regarded as the so-called “Utneokgut” and defined as Honam Jwado Nongak. The second inflection point is the activities of the Jeonju Agricultural High School(Jeonju Nonggo) “Rural Art Class”, which began in 1954 at Jeonju Agricultural High School. Jeonju Agricultural High School invites Jeong Hyeong-in, a master, to teach dance, Samheonyukgak, folk songs, and Nongak to students of Jeonju Agricultural High School students. At this time, Udo Nongak, who was active in Jeongeup and Gimje, will be appointed as Nongak instructors. From this point on, Jeonju Nongak serves as an opportunity to turn to Honam Udo Nongak. The third inflection point is the era of the Women’s Nongak Band (Yeoseong-nongakdan), which has gained explosive popularity since the 1960s. Starting with the “Namwon Women’s Nongak Band,” Jeonju has become a hub city for Udo Nongak at once through numerous women’s Nongak periods such as the “Honam Women’s Nongak Band,” “Jeonbuk Women’s Nongak Band,” and so on. Like Jeonju Agricultural High School, the women’s Nongak Band leaders were Udo Nongak masters from Jeongeup and Gimje. The Women’s Nongak Band created a new performance style called “Entertainment Nongak.” Jeonju Nongak has a strong memory of this time. This is because they became a new tradition of Jeonju Nongak during this period. Although it put the box office ahead, it is worth evaluating in that it is a subversive thinking that consists of only women and the modernity of the traditional style by reconstructing the existing Madangpan nori into a stage style.

한국어

본 논문은 전주에서 연행되어 온 농악의 변천 양상을 살펴본 내용이 다. 근대 이후 전주농악은 몇 차례의 굵직한 변화과정을 거친다. 그 양 상에 따라서는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특기할 만하다. 근대시기 이후 전주농악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1967년에 홍현식, 김천흥, 박헌봉에 의해서 조사되고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湖南農樂 이다. 이 보고서는 전주농악의 성격 과 관련된 최초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전주농 악을 이른바 ‘웃녘굿’으로 보고 호남좌도농악이라고 규정한 데에 있다. 두 번째 변곡점은 1954년도에 전주농고에서 시작한 「전주농고 농촌 예술반」 활동이다. 전주농고는 정형인 명인을 초청하여 전주농고 학생 들을 대상으로 무용, 삼현육각, 민요, 농악을 가르친다. 이때 농악 강사 로는 정읍과 김제에서 활동하던 우도농악인이 투입된다. 이 시점부터 전주농악은 호남우도농악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된다. 세 번째 변곡점은 1960년대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여성농악단 시대이다. ‘남원여성농악단’을 필두로 ‘호남여성농악단’, ‘전북여성농악 단’, ‘전주여성농악단’ 등 수많은 여성농악단 시기를 거치면서 전주는 일거에 우도농악 거점도시가 된다. 여성농악단 지도자들도 전주농고와 마찬가지로 정읍과 김제 출신의 우도농악 명인들이었다. 여성농악단은 이른바 ‘연예농악’이라는 새로운 공연양식을 창출하였 다. 전주농악은 이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들이 현시기 전 주농악의 새로운 전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흥행을 앞세우기는 했 으나 치배를 여성만으로 구성하는 전복적(顚覆的) 사고와, 기존의 마당 판 놀음을 무대양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전통양식의 근대성 실현이라 는 점 등에서 평가할 만하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전주농악의 변천사
3.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호남농악(湖南農樂)』이 기록한 전주농악
4. 전주농고 「농촌예술반」 운영과 전주농악
1) 전주농고 농촌예술반 담담교사 이기주의 구술
2) 금파 김조균(1940~1998,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이 기록한 전주농고 시절
3) 전주농고 출신 정인삼(1942~, 고깔소고 경기도무형문화재)의 기록
5. 여성농악단의 거점도시 전주
1) 여성농악단의 공연 레퍼토리
2) 여성농악단과 전주
3) 여성농악단의 학술적·사회문화적 가치
4) 전주 거주 여성농악단 출신 국악인
6.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성식 Kim, Sung-sik. 전북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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