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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가 건설과 문화국가론의 전개 — 패전후 일본, 해방후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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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State Construction and Cultural State Theory – Post-War Japan, Post-Liberation Korea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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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article compared and analyzed the theory of the “cultural state” developed in Japan after the defeat and in Korea after liberation, acknowledging the theory of the “cultural state” accepted during the formation of imperial Japan. In the late Meiji period, the concept of a “cultural state” was to put the state’s active intervention in promoting the welfare and happiness of the people. In the late 1910s, the theory of a “cultural state” acquired the logic of unification with militarism. After World War II, most modern countries advocated a “cultural state.” However, the history of the empire’s “cultural state” that justified militarism was not particularly problematic in Japan or Korea. In Japan, it suspended the ideological power supplied to “militarism” and “power states” and included “democratic state” and “peace state” without changing the “cultural state” tag. This question has not been raised whether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ultural state” and “militarism” is weak. In Japan, in 1946, Koyama Iwao, a representative figure of the Kyoto school, published “The Ideology of “the Cultural State.” His book, emphasizing the difference from other “cultural state” theories, narrowed the distance from the logic of the “overcoming modernity” of the exhibition period by repeating terms such as “modern end” and “ultra-modern.” In Korea, Kim Gu’s Baekbumilji was published in 1947. Kim Gu did not use the term “cultural state,” but in the 2000s, his book was newly highlighted as the theory of “cultural state.” This may be an opportunity to add a Korean context to studying domestic cultural countries. Still, it should be preceded by asking why such illumination was not provided contemporarily.

한국어

이 글에서는 제국 일본의 형성기에 수용된 문화국가론을 염두에 두면서 패전후 일본과 해방후 한국에서 전개된 문화국가론을 비교․분석하였다. 메이지 시대 후기, ‘문화국가’는 국민의 복리 및 행복 증진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중시하는 국가개념으로 수용되었다. 일본이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1910년대로 들어서면서 문화국가론은 군국주의의 정당화에 동원되었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법치국가의 한계를 극복한 국가개념으로서 전시체제를 지탱하는 논리를 강화해 갔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평화의 중요성에 눈뜬 대부분의 현대국가는 ‘문화국가’를 표방하였다. 하지만 군국주의를 정당화했던 제국의 문화국가론은 패전후 일본에서도 해방후 한국에서도 딱히 문제되지 않았다. 일본의 문화국가론은 군국주의와 국방국가에 공급해온 동력을 단번에 중단하였고, 문화국가는 이름표도 떼지 않은 채 민주국가와 평화국가의 엄호에 나섰다. 그 변신의 신속함 때문인지, 신국가 건설의 시급함 때문인지, 전전의 ‘문화국가’에 대한 망각을 의문시하는 물음은 제기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거국적인 ‘문화국가’가 표방되지 않아서인지, 제국 일본에 대한 기억도 제국의 문화국가론에 대한 기억을 깨우지는 못했다. 한편, 일본과 한국의 ‘문화국가’론은 동시대성 속에서 각각의 사상적 시차를 보이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1946년, 고야마 이와오가 <<문화국가의 이념>>을 발표하였다. 평범한 ‘문화국가’론과 선을 그은 그의 저서는 ‘문화국가 건설’의 이름으로 전시기 ‘근대의 초극’론을 반복하였다. 한국에서는 1947년에 김구의 <<백범일지>>가 출간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 그의 저서는 문화국가론으로 새롭게 조명되었다. 뒤늦게 재조명된 그의 ‘문화국가’론은 ‘국가’와 ‘문화’의 관계에 관한 사상적 단초를 제공하는 동시에, ‘민족주의’라는 사상적 시차도 함께 드러냈다.

일본어

本稿においては、帝国日本の形成期に取入れられた「文化国家」論を念頭に置きつつ、敗戦後の日本と解放後の韓国において展開された文化国家論を比較․分析した。 明治時代の後期、「文化国家」は国民の福利の増進のための国家の積極的介入が強調される国家概念として捉えられた。日本が第1次世界大戦に参戦した1910年代に入ると、文化国家論は軍国主義の正当化に用いられ、日中戦争以降は、法治国家の限界を乗り越えた国家概念とされ、戦時体制を支える論理を強化していった。 第二次世界大戦が終わった後、平和の重要性に目覚めた現代国家の多くは「文化国家」を掲げた。しかし、軍国主義を正当化した帝国の文化国家論は、敗戦後の日本でも解放後の韓国でも特に問題にならなかった。日本の文化国家論は、軍国主義や国防国家に供給してきた思想的な動力を一気に打ち切り、文化国家は名札も剥がさぬまま民主国家や平和国家の援護に乗り出した。その変身の迅速さのためか、新国家の建設の緊急性のためか、戦前の「文化国家」に対する忘却を疑問視する問いはかけられなかった。韓国では、帝国日本に対する記憶も、帝国の文化国家論への記憶を促すことはなかった。 日本と韓国の「文化国家」論は、同時代性の中でそれぞれ思想的時差を見せたりもした。日本では1946年、高山岩男が<<文化国家の理念>>を発表した。平凡な「文化国家」論と一線を画した彼の著書は文化国家の建設󰡕の名の元で「近代の超極」論を繰り返した。一方、韓国では、1947年に金九の<<白凡逸志>>が刊行されたが、彼の著作は、2000年代に入ってから文化国家論の観点から捉え直されるようになった。彼の政治理念は、「国家」と「文化」の関係の見直しへの手がかりとなる一方で、「文化国家」の構想を行うに当って、「民族主義」という思想的時差をも浮彫りにした。

목차

<요지>
Ⅰ. 머리말 : 문화국가론
Ⅱ. 제국 일본 형성기의 ‘문화국가’ 수용과 논리
Ⅲ. 패전후 일본의 문화국가론
Ⅳ. 해방후 한국의 문화국가론
Ⅴ. 문화국가론의 동시대성과 사상적 시차
Ⅵ. 맺음말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저자정보

  • 이경희 Lee, Kyung-hee. KAIST 강사, 일본근현대문학ㆍ문화 전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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