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Section V of The Tragic Generation, Book IV of The Trembling of the Veil (1922) opens with a double-themed meditation on the Rhymers’ Club and what became the Irish Literary Society. The connexion perhaps lies in the numbers of Irish- or Celtic-sympathizers among the active membership of the Rhymers’ Club. John Kells Ingram (1823-1907), who wrote in March 1843 ‘The Memory of the Dead’. arguably the greatest literary ballad of the Young Ireland era. By the time Yeats admitted authorship, Ingram’s ballad had been ‘for much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anthem of Irish nationalism.’ On the other hand, around 1916, Yeats recalls the diplomat Daniel Crilly (1857-1923)’s reading of the ballad ‘The Men of By and By’ in 1888 because, Yeats is not sure that even after the events of Easter, 1916, Ireland really has become the nation of Davis’s dream. Like Crilly then, he can only murmur over sacred names. Crilly’s old performance pushes Yeats to question only the harder this ritual of memorialisation.
한국어
비극적인 세대의 섹션 5에 있는 베일의 떨림(1922)의 제4권은 시인 클럽과 아일랜드 문학 협회에 대한 명상으로 시작된다. 이 두 조직 간의 연관성은 아마도 시인 클럽에서 활동하는 회원들 가운데 일부는 아일랜드인 또는 켈트인을 동조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1843년 3월에 존 켈스 잉그램(1823-1907년)가 쓴 「죽은 자들의 기억」은 분명 <젊은 아일랜드 시기>의 가장 위대한 발라드이다. 예이츠가 잉그램의 발라드에 권위를 부여했을 때, 이 발라드는 이미 “19세기 동안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애국가”로서 기능했다. 한편 예이츠는 외교관인 다니엘 크릴리(1857-1923)가 1888년 발라드 「바이바이의 남자들」을 낭송한 것을 떠올리면서 1916년 부활절봉기 이후에도 데이비스의 바람과는 달리 아일랜드가 하나가 되었는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한다. 그는 「1916년 부활절」에서 신성한 이름들을 중얼거릴 뿐, 추모 의식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