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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남 향촌사족의 현실 인식과 가사 창작 - 竹下 李天燮의 <四餘齋歌>를 중심으로 -

원문정보

The consciousness of reality and Kasa writing of the late Joseon Hyangchonsajok in Yeongnam province : Focusing on Lee Chun-Seop’s Sayeojaega

조선 후기 영남 향촌사족의 현실 인식과 가사 창작 - 죽하 이천섭의 <사여재가>를 중심으로 -

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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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is about the Sayeojaega (四餘齋歌) of Jookha (竹下) Lee Chun-seop (李天燮, 1730∼1807). As a result, Lee Chun-seop’s Sayeojaega was a work in which the artist opened his own space, ‘Sayeojae’, and sang about the joy of it. However, the content of the work is different from the general ‘Kangho Kasa’. This work does not only show life and its joy in nature, but also contains the meaning of respecting Zhuxi(朱熹). These characteristics appear more clear than any other Kasa of Hangchonsajok. This characteristics are deeply related to the consciousness of reality in Yeongnam province at that time. In late Joseon dynasty, the importance of the ‘Yeongnam community’ against Noron was on the rise. And also the influx of Seo-Hak (西學) caused doubts about Confucianism in many ways. Due to the loss of their political position and ideological hegemony, ideological purity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those who were almost impossible to enter the government. Therefore, identity as an orthodox Confucian scholar served as an important cause for the existence of Namin in Yeongnam. In this context, Sayeojaega represents the Namin’s consciousness of reality.

한국어

본 논문은 그 동안 연구가 되지 않았던 죽하(竹下) 이천섭(李天燮, 1730∼1807)의 〈사여재가(四餘齋歌)〉를 대상으로, 기본적인 작가, 작품론을 개진하는 것에 목적 을 둔다. 이천섭의 〈사여재가〉는 작가가 자신의 은거 공간인 사여재를 열고 그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작중에는 일반적인 강호, 은일가사처럼 은거지를 확 보한 화자의 기쁨과 은거지에서의 생활 및 내면세계만이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다. 본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자 존숭의 어조이며, 그 표현의 적극성 측면에서 다소 특징적인 면이 있다. 이는 노론에 맞선 ‘영남 공동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었던 당대 영남 지역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 다. 이에 더해 영남 남인들의 위기의식은 단순히 정치 역학적인 문제 뿐 아니라, 성리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또한 내포한 것이었다. 이 시기 근기 남인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서학 논쟁은 조선 후기 최대의 사상적 쟁점이었고, 성호학파의 핵심 인물이었던 순암 안정복의 서학비판론은 손재 남한조를 거쳐 영남 지역 전반에 전파된다. 이천섭의 교유 관계를 살펴보았을 때, 이천섭 또한 각종 이단이 횡행하는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 영남 남인들과 같이 유교 근본주의를 지향하고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영남 지역은 이 시기 중앙 권력과 이단적 사상에 맞서, 유도(儒道) 다시금 부흥시키고자 했던 남인들을 중심으로 집단의식이 형성되었고, 이는 정통 유학의 형상으로서 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작품의 호명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여재가〉에는 조선 유학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영남의 유풍을 되살리고자 하였던 당대 문인들의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 아울러 당시 영남 문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이천섭은 작품을 통해 부정적인 현실 인식과 평생 향촌의 선비로 안빈낙도를 궁구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는 삶을 나타내 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영남 지역에는 〈사여재가〉와 같이 유가적 이상향, 이념의 순수성을 표방하는 강호·은일 가사류 작품들이 다수 출현하였다. 한편으로 도통 의식을 직접 적으로 표출하는 도학가사류 작품들 또한 이 시기에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해당 작품들이 갖는 의미지향에 내적 유사성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조선 후기 영남 문인들의 현실 인식과 문학 활동
1) 이천섭의 생애 및 활동
2) 조선 후기 영남 문인들의 위기의식과 그 현실적 배경
3. 竹下 李天燮의 〈四餘齋歌〉
1) 주자 존숭 의식의 적극적 투영
2) 현실 인식과 유학적 실천 의지 표명
4. 나가며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윤지아 Yoon, Jia. 공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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