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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과 『사진주보(写真週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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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s Invasion of Southeast Asia and Syasinsyuhou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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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Before the Asia-Pacific War, Japan focused on blocking the U.S.-British Chiang Kai-shek aid route, especially Burma and French Indochina, tried to show off its status to the Japanese people by reconciling disputes between Southeast Asian countries. Later, when the Asia-Pacific War took over Southeast Asia, an article promoting the social image of "vibrant Daedonga public sphere" liberated from Western imperialism was published in the Syasinsyuhou. When Japan's war situation became unfavorable in earnest, Prime Minister Dojo visited Southeast Asian countries to strengthen solidarity, while also highlighting his image as a "leader of the Greater East Asian public sphere." As a way, Japan granted independence to Burma and the Philippines and approved a provisional government for free people. Since Syasinsyuhou is basically a propaganda journal that promotes Japan's policies to the public and enhances its fighting spirit, it did not report on Japan's defeat, but articles on Southeast Asian relations and war articles disappearing from the ground revealed Japan's unfavorable situation. Among the articles on the Greater East Asia Common Territory in the Syasinsyuhou there are overwhelmingly many articles related to Southeast Asia, indicating that Southeast Asia was very important within the the Greater East Asia Common Territory aimed at an economic community.

한국어

아시아태평양전쟁 개전 이전에는 미국과 영국의 장제스 원조 루트를 저지하거나 파괴하는 데 중점을 두고 특히 버마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지역에 주목했던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 사 이의 분쟁을 조정하면서 ‘대동아의 맹주’로서의 위상을 일본 국민들에게 과시하고자 했다. 이 후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동남아시아지역을 점령하자 서구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활기찬 대동 아공영권’의 사회상을 홍보하는 기사를 사진주보에 게재했다. 1943년에 들어 일본의 전황이 본격적으로 불리해지자 도조 수상은 동남아시아 국가를 시찰 하며 결속을 다지는 한편, ‘대동아공영권의 맹주’로서의 이미지도 부각시켰다. 그 방편으로 일 본은 버마와 필리핀에 독립을 부여하고, 자유인도 임시정부를 승인했다. ‘대동아공영권’의 독립 국인 태국에 대해서는 과거의 영토를 회복시키고 특별히 사진주보의 지면을 할애하여 홍보 를 해주었지만 끝내 대동아회의에 피분수상이 불참한 것은 ‘대동아공영권’ 내부로부터의 붕괴 를 의미했다. 사진주보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정책을 국민에게 홍보하고 전의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담 당하는 프로파간다 저널이기 때문에 일본의 패전 상황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았지만 지면에서 사라지는 동남아시아 관계 기사와 전쟁기사는 일본의 불리한 전황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사진주보에 나타난 ‘대동아공영권’ 기사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기사의 비중이 적고, ‘만주 국’, 난징정부에 비해서도 동남아시아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만큼 경제공동체를 지 향하는 ‘대동아공영권’ 안에서 동남아시아가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어

日本は、アジア・太平洋戦争以前には援蒋ルートを絶つことに重点を置き、特にビルマと仏印に 注目し、東南アジア国家の紛争を調停することで、'大東亜の盟主'としての位相を日本国民に見 せびらかした。アジア・太平洋戦争の開戦と共に東南アジアを占領した後は、西洋の帝国主義国家 から解放された'活気あふれる大東亜共栄圏'の姿を『写真週報』に載せた。 日本の戦況が本格的に不利になると、東條首相は東南アジアを視察して結束を図る一方、'大 東亜共栄圏のリーダ'としてのイメージを強調した。また、ビルマとフィリピに'独立'を与え、自由 印度仮政府を承認した。大東亜共栄圏の独立国であるタイ国に対しては特別に礼遇したが、ピブン 首相は大東亜会議に欠席した。そのことは大東亜共栄圏が内部から崩壊されていることを意味し た。 『写真週報』は基本的にプロパガンダ雑誌であるために、日本に不利な敗戦に関する記事は報 道しなかったが、紙面から消された東南アジア記事や戦争記事から状況を隠しきれなかった。 『写真週報』に表われた'大東亜共栄圏'記事は基本的に植民地関連記事の割合が少なく、 満州国および汪兆銘政権より東南アジア関連記事が多い。'大東亜共栄圏'の中で東南アジアが もっとも重要であることが窺える。

목차

1. 머리말
2. 아시아태평양전쟁 이전의 동남아시아 관련 기사
3. 아시아태평양전쟁 개전과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
4.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동아시아
5. ‘대동아공영권’의 붕괴
6. 맺음말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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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 김영숙 Youngsuk Gim. 동북아역사재단 초빙 연구위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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