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deals with the life and thought of Namfa(南坡) LeeHuiseok(李 喜錫, 1804~1892), as part of a study on the members of the Nosa School(蘆 沙學派). LeeHuiseok was a Confucian scholar in Jangheung, Jeollanam-do in the late Joseon Dynasty, a former disciple of Nosa(蘆沙) KiJeongjin(奇正鎭, 1798~1879), and a writer who left many poems and prose in the life of YàoShānYàoShuǐ(樂山樂水). LeeHuiseok was 6 years younger than KiJeongjin and maintained a relationship of mutual teacher and f riend t hroughout h is life. He contributed greatly to the formation of the early Nosa School, by playing a role as an elder of the Nosa learning group, and played a pivotal role in spreading Nosa Studies in the Jangheung area. Furthermore, while interacting with not only the Nosa school but also KimPyeongmuk and ChoiIkhyeon of the Hwaseo school, he shared the thoughts of his teacher KiJeongjin and sympath ized with his c ritical perception of the problems of real society. Although LeeHeeseok did not directly emphasize the Neo-Confucian view of Lǐqìxīnxìnglùn(理氣心性論) or his teacher KiJeongjin's academic position, h e t rusted a nd f ollowed h is t eacher's s tudies. Cosidering t hat L eeHeeseok often quotes the words of Zhōuyì(周易) in his anthology, it can be seen that he was deeply versed in Zhōuyì. In particular, He grasped his life and the situation of the times according to the circular logic of ‘WùJíBì Fǎn(物極 必反)' of Chéngyí(程颐)’s Yìxué(易學), and then criticized the reason why the Byeonginyangyo(丙寅洋擾) occurred externally from the perspective of ‘jīwēi (幾微)’ in Zhōuyì(周易), criticized on various social problems, such as the reality that someone forms groups and fight factions internally, the society that someone pursues only fame without educating, the custom that children dishonors their parents by begging. The surrounding scholars evaluated LeeHeeseok as the best scholar among the disciples of his teacher KiJeongjin who trusted and inherited KiJeongjin's theory. LeeHeeseok's status is in that he criticized the ills of real society according to Yīnyángxiāozhǎng(陰陽消長) of the logic of the 'WùJíBìFǎn(物極必反)' even in poor life, and believed that the overall situation of difficulty could be recovered, and showed that the appearance of an intellectual who pursues righteousness.
한국어
본 논문은 노사학파(蘆沙學派) 인물 연구의 일환으로, 남파(南坡) 이희석(李喜錫, 1804~ 1892)의 생애와 사상을 다루고 있다. 이희석은 조선 후기 전남 장흥의 유학자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직전 제자이며,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삶 속에서 많은 시문을 남겼던 문장가이다. 이희석은 기정진보다 6살 아래로 평생 상호 스승과 벗의 관계를 유지하 였다. 그는 노사학단(蘆沙學團)의 연장자 역할을 하면서 초기 노사학파의 형성에 크게 공헌 하였으며, 장흥 지역에 노사학을 전파하는 중추적인 가교역할을 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노 사학파뿐만 아니라 화서학파의 김평묵, 최익현 등과 교유하면서 스승 기정진의 사유를 공유 하였고, 현실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공감하였다. 이희석은 학문적으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에 대한 성리학적 견해나 스승 기정진의 학 문에 관한 입장을 직접 역설하지는 않았지만, 스승의 학문을 신뢰하고 따랐다. 문집에 주역 의 경전을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보아 주역에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정 이(程頤) 역학(易學)의 ‘물극필반(物極必反)’ 순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삶과 시대 상황을 파악 하였는데, 대외적으로 병인양요가 일어난 이유를 주역 ‘기미(幾微)’의 관점에서 비판하였 고, 대내적으로 붕당을 만들어 당파싸움을 하는 현실, 강습교육을 하지 않고 명리만을 추구 하는 사회, 구걸하여 부모를 욕되게 하는 풍습 등 다방면의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의식(批判 意識)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 학자들은 이희석을 스승 기정진의 제자들 가운데 스승의 이론 을 신뢰하고 계승한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하였다. 이희석의 위상은 가난한 삶 속에도 현실사회의 병폐를 비판하면서 ‘물극필반’의 논리인 음양소장(陰陽消長)에 따라 총체적 난국 의 상황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재야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목차
1. 서론
2. 가계와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삶
3.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역학적 사유
4. 현실 인식과 비판
5. 후학의 평가
6. 결론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