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look at the Righteous Armies (RA) in the Jeolla province. In this article, Gurye RA refers to the RA activity from Gurye(求禮) or RA activity developed on the stage of Gurye. It is difficult to find any specific research on Gurye RA. Accordingly, the figures who were from Gurye and participated in the RA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RA activities were first reviewed. Next, the characteristics of a righteous camp, who was active in the Gurye area, were examined. As a result, RA from Gurye were born in the 1850s and 1880s, and the age of participants in RA activities at the time was between their 20s and 50s. Their status and occupation were identified as ordinary farmers or merchants, except for two Confucian scholars, Lim Hyun-joo(林顯周) and Yoo Byeong-gi(劉秉淇). Their residences are mainly mountainous areas such as Masan-myeon and Toji-myeon close to Mt. Jiri and Mt. Baegun. Some of them were active in a righteous camp in other regions, and most of RA who were active in Gurye belonged to a righteous camp Ko Gwang-soon(高光洵). Among them, Yoo Byeong-gi was the most notable RA leader. Baek Nak-gu(白樂九), Kim Dong-shin(金東臣), and Ko Gwang-soon are representative of the RA leaders from other regions who worked in Gurye. They organized their own righteous camps and were active in Gurye and other Mt, Jiri areas. Among them, Baek Nak-gu was the blind RA, and he was the first to raise a RA in Gurye. After that, Kim Dong-shin from Hoedeok(懷德), Chungcheongnam-do, and Ko Gwang-soon from Changpyeong (昌平), Jeollanam-do, staged an anti-Japanese struggle based on the so-called the theory of the base camp in Mt. Jiri(智異山根據地論). In particular, they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RA by using temples in Gurye, such as the Munsuam Temple in Munsugol and the Yeongoksa Temple in Piagol, Mt. Jiri areas. In addition, they fought with the Japanese military and police by crossing Mt. Jiri areas such as Namwon(南原) in Jeollabuk-do, Gwangyang (光陽) and Gokseong(谷城) in Jeollanam-do, and Hamyang(咸陽) and Hadong (河東) in Gyeongsangnam-do, centering on Gurye. Their theory of the base camp in Mt. Jiri was well received by RA in the Samnam(三南, the three provinces) region, and around 1908, Mt. Jiri was transformed into a righteous army base camp.
한국어
이 글은 전라도 의병 중에서 求禮 義兵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글에서 구례 의병이란 구례 출신으로 의병 활동을 했거나, 구례를 무대로 전개한 의병 활동을 의미한 다. 지금까지 한말 구례 의병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구례 출신으로 의병에 참여한 인물과 그들의 의병 활동상의 특징을 먼저 검토하였다. 다음으 로 구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義陣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구례 출신 의병들은 1850년대에서 1880년대 출생자로서 의병에 참여한 당시의 연령은 20대에서 50대에 해당되었다. 이들의 신분이나 직업은 임현주와 유병기 등 유학자 2명을 제외하면 평범한 농민이나 상인들로 파악되었다. 이들의 거주지는 마산 면과 토지면 등 주로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가까운 산간 지역이다. 이들 중 일부는 타 지역의 의진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으며, 구례에서 활동한 의병들은 대부분 고광순 의 진 소속이었다. 이들 중에서 유병기가 가장 대표적인 의병장이었다. 구례에서 활동한 타 지역 출신 의병장으로는 백낙구 김동신 고광순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독자적인 의진을 조직하여 구례를 비롯한 지리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 중에 백낙구는 맹인의병장이었는데, 구례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충남 회덕 출신의 김동신과 전남 창평 출신의 고광순은 이른바 지리산근거지론에 입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이들은 지리산 문수골의 문수암과 피아골의 연곡사 등 구례지역 사찰 을 근거지로 삼아 의병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또한 이들은 구례를 중심으로 전북의 남원, 전남의 곡성 광양, 경남의 하동 함양 등 지리산권역을 넘나들며 일본 군경과 싸웠다. 이들의 지리산근거지론은 삼남지방 의병들의 큰 호응을 받았으며, 1908년을 전후하여 지리산은 의병기지로 탈바꿈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구례 출신의 의병
Ⅲ. 구례지역의 의병항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