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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agata Aritomo and the Building of Meiji State
초록
영어
This paper examines the role that Yamagata Aritomo played in the building of Meiji state by analyzing various policies he led from the establishment of the Meiji government to 188990. He contributed to the centralization of the new government by organizing an imperial army directly belonging to the government(Goshinpei) and unifying military systems in the country, and also tried to build a national army and a nationstate by introducing a system of universal conscription. Next, he insisted on gradually establishing a constitution and opening a parliament under the superiority of the government to the latter amid Movement for Freedom and Popular Rights. And after the decision to open a parliament, he designed a local autonomy system as a countermeasure to separate local and central politics but to strengthen human links between them. Finally, he directly linked the emperor with soldiers and the nation without passing through a parliament by enacting the Imperial Precepts to the Soldiers and Sailors(Gunjinchokuyu) and the Imperial Rescript on Education(Kyōikuchokugo). Also, through the examination above, this paper was able to make the position clear of the military, the nation, and the emperor in the state he had pursued and built.
한국어
본고는 신정부 수립 직후부터 1889~90년에 걸쳐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가 주도한 각종 시책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메이지(明治) 국가 건설에서 수행한 역할을 고찰한 것이다. 그는 신정부 직속군인 어친병(御親兵)을 편성하고 군제를 통일함으로써 신정부의 중앙 집권화에 기여하였고, 또 국민개병주의에 입각한 징병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국민군 및 국민 국가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자유 민권 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를 우위에 두면서 점진적인 헌법 제정 및 국회 개설을 주장하였고, 국회 개설이 기정사실이 되자 그 대책으로 지방과 중앙의 정치는 분리하되 인적 연계는 강화하기 위해 지방 자치 제도를 설계하였다. 마지막으로 군인칙유(軍人勅諭) 및 교육칙어(敎育勅語)를 제정・발포함으로써 의회 등을 경유하지 않고 천황을 군인 및 국민과 직결하고자 하였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그가 추구하고 건설한 국가 내에서 군대와 국민, 그리고 천황은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목차
2. 신정부 직속군 편성과 중앙 집권화 추진
3. 징병 제도 도입과 국민 국가 수립
4. 민권파에의 대항과 입헌제 구상
5. 국회 개설 대책으로서의 지방 자치 제도 설계
6. 맺음말
참고문헌
要旨
ABSTRACT